역사(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10장)
- 최초 등록일
- 2020.06.26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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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II. 본론
1)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한 이유
2)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한다면 (나를 주체로 하여 가정을 기술)
3) 신라 삼국통일이 갖는 한계 및 아쉬움
III. 결론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역사를 배우며 아쉽게 생각했던 몇 가지 부분들이 있다. 그 중 현재까지도 단연 가장 아쉬운 역사로 남아있는 것은 ‘고구려, 그리고 삼국통일’과 관련한 것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었다.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이라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토 확장에 대한 아쉬움, 예컨대 만주와 요동지역, 한반도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물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찬란한 역사가 이어졌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밝은 미래에는 훌륭한 통치자, 관리 들이 전제돼야 하고 중국 지역으로 뻗어 나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고구려 영토가 처음부터 상당한 규모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작은 나라로 출발한 고구려는 4세기부터 영토를 확장했고 미천왕에 이르러 낙랑군과 대방군을 멸망시키고 요동 땅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5세기 초에는 광개토대왕이 강국으로서의 기틀을 다졌고 이어 장수왕은 수도를 평양으로 옮겨 선왕의 업적을 공고히 했으며 비로소 동북 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는 당시 남북조로 나뉘었던 중국으로부터 최상의 대우를 받으며 대등한 위치에서 외교를 펼쳤고 몽고의 유연, 중앙 아시아의 다수의 국가와 관계를 돈독히 하였고 동시에 북방 유목 세력-남 중국 간 외교를 중개할 정도로 상당히 독자적으로 외교망을 구축하기도 했다. 또한, 장수왕 때 백제의 수도, 즉 한성을 함락시키며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백제를 몰아냈고, 신라에 대한 군사적 압력을 강화하며 아산만-영덕을 잇는 선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남한강 상류에 있는, 마치 광개토대왕릉비를 축소해 놓은 것과 같은 모습의 중원고구려비에 적힌 신라를 동이라 부르며 신라왕, 신라 신하들에게 의복을 하사한 사실 등의 정보를 통해 알 수 있다. 왜 그 당시 고구려가 엄청난 힘을 통해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아쉬움이 계속해서 든다. 고구려는 신라와 백제가 고구려에 복종하는 속국의 형태로 존재하는 데 만족했던 것이 고구려의 더 큰 발전의 발목을 잡은 이유일지 모른다는 짐작을 한다.
참고 자료
『문답으로 엮은 한국고대사 산책』 <역사비평사>
『한국고대사, 그 의문과 진실』 <김영사>
『꿈이 담긴 한국고대사 노트』 <일지사>
『한국고대사 입문 - 한국문화의 기원과 국가형성』 <신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