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재정 관리와 삼정(三政)의 문란
- 최초 등록일
- 2020.06.29
- 최종 저작일
- 2020.03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의 재정 관리와 삼정(三政)의 문란"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조선의 재정시스템
1. 지방재정 시스템
2. 중앙-지방 이원적 시스템
Ⅲ. 삼정(三政)의 문란과 그 해결책
1. 삼정(三政)과 사회상
2. 삼정(三政의 해결책
Ⅳ. 삼정이정청의 개혁시도와 실패
1. 삼정이정청의 민란수습책
2. 삼정이정청의 해산과 개혁의 실패
Ⅴ. 결 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일본 민중운동사 연구자인 후카야 카츠미는 민중운동사에 대해 각 사회의 각 시대 고유의 깊은 지반과 의식 구조에 규정되지만, 거꾸로 그것을 규명하는 창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壬戌民亂의 연구는 19세기 조선 민중의 민중상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의 민중사 연구에는 서구 중심적 역사인식의 영향이 적지 않다. 1956년의 김용섭은 19세기 조선의 상황에 대한 연구에서 민중의 위치를 중점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한 연구자이다. 그는 민중을 근대 지향적으로 파악하였고, 1862년 민란의 발발 원인에 대해 지배층의 타락이 아닌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지목하고 근대 지향적이었던 민중들이 근대로 나아가기 위해 이에 대항하였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시각은 민중을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리는 한편 지나치게 서구적 경험에 근거한 ‘보편적 발전법칙’에 입각한 접근이자 전형적인 토대반영론적이 시각이라고 볼 수 있다. 배항섭은 민중사의 이해를 위해서는 서구 중심적 역사인식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의 역사상을 새롭게 구성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또한 같은 동아시아 내에서도 민중상은 서로 다른 사회적 환경, 제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19세기의 조선 민중들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시 조선의 지배이념 및 사회, 제도와 같은 민중들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 배항섭의 주장대로라면 임술민란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는 당시 조선의 지배이념과 사회 제도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임술민란은 ‘三政의 문란’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삼정은 田政, 軍政, 還政으로 구성된 것으로 각각 재정, 군제, 진휼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갈수록 그 기능의 변질되어 갔고 결국은 민란을 촉발시키기에 이르렀다. 본고에서는 당시 조선의 재정시스템에 대해 살펴보고, 삼정에 대한 당시 지배층의 인식과 삼정 문란의 시정과정에서 민중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봄으로서 이 시대의 민중상에 좀더 가까이 다가고자 한다.
참고 자료
배항섭, 2013, 「임술민란의 민중상에 대한 검토」, 『임술민란과 19세기 동아시아 민중운동』, 성균관대학교출판부,
손병규, 2012, 「19세기 ‘삼정문란’과 ‘지방재정 위기’에 대한 재인식」, 『임술민란과 19세기 동아시아 민중운동』성균관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