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 답사
- 최초 등록일
- 2020.09.04
- 최종 저작일
- 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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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운현궁 답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소감
Ⅱ. 문제점 및 개선방안
Ⅲ. 마무리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거치면서 한국의 건축물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점, 그리고 한국의 건축은 정말 아름답고 분위기 있는 건축이라는 것을 이번 과제를 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사실 의무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사라는 과목을 통해서 한국의 고유 건축물들에 대해서 배웠지만 그에 대한 내용을 암기하는 식으로만 공부를 하였을 뿐이고 한국의 건축물을 감상하고 느껴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연찮게 들은 교양수업에서 느끼고 배운 한국 건축물은 생각보다 너무나 큰 것이었다. 그리고 운현궁 공식 홈페이지 탐색을 통해서 느꼈던 운현궁은 생각보다 크게 내 머릿속에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운현궁을 직접 체험해보지 못하였지만, 운현궁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운현궁의 배치도, 각 건축물에 대한 소감문, 운현궁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에 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
운현궁은 조선 제 26대 임금이었던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집이며 흥성대원군의 가옥이다. 말이 가옥이지 운현‘궁’이며, 조사하다보니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집이다. 온갖 권력욕과 명예욕 그리고 절대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자존심으로 둘러싸인 흥선대원군 말이다. 또 고종이 12세까지 살았던 집이기도 하고 고종이 명성황후와 가례를 올렸던 역사적인 흔적이 짙은 가옥이다. 운현궁 안의 건물은 크게 운현궁의 관리와 경비 업무를 맡은 이들이 거처했던 수직사, 흥선대원군이 주로 지내던 거처인 노안당, 운현궁의 첫 번째 안채였던 공간으로 고종과 명성황후가 가례를 올린 곳인 노락당, 왕이 가례를 올렸던 곳의 안채를 대신해 지어진 안채 건물인 이로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을 지나면 수직사는 운현궁 정문 오른쪽에 있는 행각으로, 운현궁의 관리와 경비 업무를 맡은 이들이 거처했던 곳이며 대문 옆으로 나 있는 복도식 행랑채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서 하인들의 거주지가 상당히 컸다는 점이다.
참고 자료
“왕실문화의 전당 운현궁”, 2020년 05월 07일 수정, 2020년 05월 07일 접속, http://www.unhyeongung.or.kr/.
“[서울하모니 서포터즈] 서울 도심속 관광지, 운현궁(雲峴宮)”, 2011년 04월 20일 수정, 2020년 05월 07일 접속,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icenet&logNo=40127651144.
“운현궁4 – 꼭꼭 숨어라, 철저한 금남의 지역 별당 이로당, 2013년 08월 29일 수정, 2020년 05월 07일 접속, blog.daum.net/orora62/1075.
”[서울 가볼만한 곳] 도깨비저택 운현궁 양관에서 출발한 북촌 도깨비촬영지, 2019년 01월 28일, 2020년 05월 08일 접속, https://cobaltbluewings.tistory.com/184.
“Google 지도” 2020년 05월 09일 접속, https://www.google.com/maps/place/운현궁/@37.4144535,127.0335502,11z/data=!4m8!1m2!2m1!1z7Jq07ZiE6raB!3m4!1s0x357ca2dcb98bf2cb:0xc526f2f307dc1df1!8m2!3d37.576034!4d126.987052?hl=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