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통혼례
- 최초 등록일
- 2003.11.14
- 최종 저작일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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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전통혼례의 유래와 변천
2. 전통혼례의 절차
3. 전통혼례에 관한 용어들
4. 신랑, 신부 혼례복의 역사
5. 전통혼례의 음식
본문내용
원래 혼인의 혼(婚)자는 혼(昏)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혼례는 어두울 때 행하는 것이 예로 되어 있었다. "대대례"라는 책에 보면 관혼은 사람의 시작이라 했다. 혼인은 곧 인륜의 시초라는 뜻이다. 또 "공자가어"에 보면, 얼음이 녹으면 농상이 시작되고 혼례를 치르면 사람의 일이 시작된다고 했다. 이로 미루어 혼인제도는 기원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는 오래 전부터 일부일처제를 중심으로 첩을 두는 다처적 경향이 후대까지 계속되었다.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신라, 고려의 왕족은 계급적 내혼의 형태를 취하여 혈족혼, 인척혼등이 성행하여졌으며, 부여, 고구려에서도 형이 죽으면 아우가 형수를 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유교의 영향이 점차 강화됨에 따라 고려말에는 외가 4촌, 이성재종자매와의 혼인이 금지되고, 조선 조에 와서 동성동본의 금혼은 물론 모계 및 처족과의 혼인이 법으로 금지되었으며 배우자의 계급적 제한도 엄격해졌다.
우리 나라에 있어서의 혼인제도의 변천을 보면, 부여에서는 일부일처제였고, 옥저에서는 돈을 받고 혼인하는 매매결혼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에서는 신부의 집 뒤뜰에 서옥이라는 조그만 집을 짓고 사위가 거처하다가 자식을 낳아 큰 다음에 비로소 아내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는 모계 씨족시대의 유풍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를 거쳐 조선조로 들어와서는 유교의 가르침에 의한 혼례가 유가의 예문에 따라 행해졌었다. 그 후 서구의 문화가 들어오면서부터 거의 모두가 신식에 의한 혼례를 행하게 되었고, 혹 전통적인 옛날의 의식을 답습하는 혼례라 하더라도 많이 간소화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