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은의 시경향
- 최초 등록일
- 2021.01.02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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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인 고은의 시경향"에 대한 내용입니다.
과제 작성 당시 고은의 심각한 결함들이 밝혀지기 전이라 그점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2.1. 초기 시
2.2. 역사의식과 현실참여문학
3.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고은(1933.8.1~)은 한반도의 식민지 시대, 해방 후, 6.25전쟁, 군사정권 등 여러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시를 썼고, 지금도 꾸준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시인 고은은 전북 옥구군 미면 미룡리 용둔분락에서 아버지 고근식, 어머니 최점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은태였고 6.25전쟁 중에 이름의 끝을 떼어내고 은이라고 자칭하게 되었다. 그는 9세까지 서당에 다니다가 미룡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해부터 조선어 교과과목 대신에 일본어만으로 수업을 했다. 정식적인 조선어 교육 대신 고은은 동네 머슴 대길이 아저씨를 통해 언문을 배우고 그 나이 때 읽어서 안 되는 신식 연애소설을 읽기도 했다. 3학년 때 장차 무엇이 되겠냐고 묻는 일본인 교장의 질문에 그는 천황이 되겠다고 한다. 그 때문에 천황모독죄로 썩은 보리를 가려내는 강제 작업을 했고 이 때 고독을 체험했다고 한다.
해방 직후 새로 부임한 친일파 교장을 몰아내기 위해 교내 동맹휴학을 하는데 주모자의 하나가 되었다. 반탁동맹휴학, 단정반대동맹휴학을 하기도 했다. 군산 사범학교 입학시험에서 동맹휴학사건 때문에 품행문제로 불합격을 하고 다음해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이때부터 공부와 멀리하며 미술부에 들어가 교내전에서 1등상을 받기도 했다. 집과 학교를 가는 길목에서 『한하운시초』를 습득하여 문학적 충격을 받고 이광수, 노자영 등을 읽기 시작했다.
6.25 전쟁으로 4학년 휴학을 하고 3개월 동안 인공 치하에 노동을 하며 지내던 중 한 마을의 선배와 함께 호성(湖星)이라는 호를 쓰며 시를 습작하기 시작했다.
1952년 효봉스님을 만나 법명을 일초(一超)라 짓고 불교 승려가 된다. 12년 동안 수선과 만행을 하기도 하고, 목포 유달산 암굴의 거지대장 수제자가 되어 구걸행각에 한동안 몰입하기도 한다. 승려 생활 중 1958년 시 「폐결핵」을 친구가 투고 하여 조지훈의 천거로 한국시인협회 기관지 <현대시>에 발표되어 시단에 나오게 되어 등단하게 된다.
참고 자료
고은, 『고은전집』, 「제1권 머리말」 김영사, 2002
김미혜, 「『만인보』의 시적 서사와 민중성 연구」, 국어교육연구, 2008
손남훈, 「고은 초기 시의 허무주의와 그 전화(轉化)」 코기토, 2009
송기한, 「고은 초기 시 연구」, 人文科學論文集, 2005
이인영, 「김춘수와 고은 시의 허무의식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