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레포트(마리퀴리와 리제 마이트너)
- 최초 등록일
- 2021.02.01
- 최종 저작일
-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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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레포트(마리퀴리와 리제 마이트너)"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두 인물의 생애
2. 두 인물 비교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여성 과학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한 명만 이야기해보라 하면 대부분 마리 퀴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마저도 ‘마리 퀴리’보단 ‘퀴리 부인’으로 더 잘 알려졌지만 말이다. 마리 퀴리 말고 또 다른 한 사람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과학이 역사적으로 남성의 전유물이었으며 여성들의 과학 정규 교육 과정 배제가 19세기까지도 이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리제 마이트너의 스승이었던 막스 플랑크 조차 대학 교육은 여성의 본성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을 정도였으니 이 당시 교육은 여성들에게 있어서 당연하지 않았다. 그런 상확 속에서도 마리 퀴리와 리제 마이트너가 원자물리학 발전에 큰 공헌한 과학자임은 틀림없다.
따라서 방사능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고 우라늄 광석에서 염화라듐을 추출했던 마리 퀴리와 핵분열을 발견한 리제 마이트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 보고서에서는 10여 년의 차이로 비슷한 시기에 생존했던 두 인물의 일생에 대하여 당시의 시대적 배경 및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과학연구와 주변 인물들을 토대로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Ⅱ. 본론
1. 두 인물의 생애
- 마리 퀴리의 생애
마리 퀴리(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Maria Skłodowska-Curie)는 1867년 11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그때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1795년부터 장장 123년 동안 폴란드는 프로이센 왕국,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군주국) 3국에 의해 분할 통치를 받았다. 독재적인 러시아의 지배에 폴란드의 지식인들과 중산층이 억압되었고 러시아어가 공식 언어였기 때문에 폴란드어를 쓰는 것은 금지되었다. 폴란드인들은 이러한 문화 탄압과 민족 말살 정책에 맞서 두 차례의 무장봉기 운동을 펼쳤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이를 반복하며 통합되었던 민족의 정체성이 분열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민족의 통일성을 유지하려는 사회 정치 운동이 일었다.
참고 자료
샤를로테 케르너, 이필렬 옮김, 『리제 마이트너』 (양문, 2009)
바바라 골드스미스, 김희원 옮김, 『열정적인 천재, 마리 퀴리』 (승산, 2009)
데니스 브라이언, 전대호 옮김, 『퀴리 가문』 (지식의숲, 2008)
박민아, 『퀴리&마이트너: 마녀들의 연금술 이야기』 (김영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