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려사절요의 체제와 사적가치의 논고"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고려사절요
1. 체제와 구성
2. 고려사절요의 편찬자
3. 고려사절요의 사론
Ⅲ. 고려사절요의 저본 논쟁
Ⅳ.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비교
1. 공통점
2. 차이점
Ⅴ. 반포 당시의 논쟁
Ⅵ. 맺음말
본문내용
Ⅰ. 서 론
조선시대 특히 전기를 전통사학이 정착되며 발전한 시기라고 한다. 14세기를 경과하며 고려왕조에서 조선왕조로 역사적 대변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조선 신진 사대부들은 새로운 통치제도 정비의 일환으로 각 관부를 중심으로 현실적·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여러 서적들을 편찬 하였는데 역사 분야에서도 관부를 중심한 사서, 즉 관찬사서가 편찬되었다.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바로 시작한 것은 고려시기에 대한 역사 정리 사업이었다. 이전 왕조에 대한 역사 편찬으로 새로운 왕조의 출범과 그 정책 노선의 역사적 정당성과 정체성 인식에 있어서 이전 왕조에 대한 역사 편찬은 매우 절실하고 민감한 사안이었다. 1451년(文宗 元年)에 드디어 5대를 거쳐 『고려사』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고려사』가 기전체 형식으로 되어 있어 열람하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고려시기의 역사가 편년적 순서로 정리될 필요성이 김종서에 의해 제기 되었으며 다음해(1452년) 2월에 『고려사절요』가 완성되기에 이른다. 『고려사절요』는 『고려사』를 방대한 내용의 正史로 편찬한 후 그와 연관하여 간략한 내용인 史略으로 편찬한 책이다. 『고려사』와 함께 그것이 편찬될 당시에는 현실에 직결된 역사를 정리한 일종의 당대사當代史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먼저 『고려사절요』에 대하여 살펴보고, 『고려사절요』를 이해하는 데는 두 책을 대비가 일부 필요하기에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세밀하게 따져 볼 것이다. 그리고 당시 조선에서 이 두 사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두 사서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며 마칠 예정이다.
Ⅱ. 고려사절요
1425년(文宗 2年) 김종서金宗瑞 등 왕명을 받아 찬수하여 춘추관春秋館의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현재는 전하지 않는 윤회의 『수교고려사』와 권제의 『고려사전문』을 참조하여 1451년 완성된 『고려사』의 내용을 축약하여 5개월 만에 편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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