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의 형성
- 최초 등록일
- 2021.05.29
- 최종 저작일
- 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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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초기 기독교의 형성"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기원후 초기의 유대교
2. 세례요한과 나사렛 예수
3. 예루살렘의 처음 교회
4. 헬라파의 약진
5. 바울: 첫걸음
6. 바울 : 전진
7. 바울: 교회의 우두머리
8. 바울: 신학자, 순교자
9. 60년대의 큰 위기
10. 기독교의 반격
11. 바울 후예들의 소생
12. 성숙한 기독교를 향하여
13. 기반 강화와 그리스화
본문내용
1. 기원후 초기의 유대교
1)기원후 1세기초 팔레스타인의 유대교는 토라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고자 하는 열의에 찬, 그러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에 관해서는 전혀 상반된 생각을 가진 몇 개의 소수 집단들과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모세의 종교를 따르는 삶을 살던 다수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2)대부분이 농부였던 이 다수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몇몇 기본적인 계명을 지키고 있었는데 매년 명절 중 하나를 택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는 관습도 그중 하나였다.
3)이들은 또한 이방인들과의 혼인을 피했다. 그러나 토라의 규율과는 아무상관이 없는 정치적 사회적 조직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걱정거리 투성이였던 일상생활은 이 단순한 사람들에게 개혁이나 종말에 관해 생각할 여유를 주지않았다. 이들의 무관심은 열의에 차 있던 소수 집단들을 분노하게 하고 근심하게 했다.
2. 세례요한과 나사렛 예수
1)소수 집단들이 팔레스타인의 유대 민족 대중을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는 상황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들과 민중을 갈라놓는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시도중 두가지가 바로 세례요한과 예수의 경우이다.
2)세례요한에 대해서는 알려진바가 충분하지 않은데 그는 유대의 제사장 집안 출신이었던 듯하며 광야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무리에게 하나님의 도래가 임박했으며 즉시 회개하라고 외쳤고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는 세상끝날의 예언자처럼 보였으며 어떤이들은 엘리야로 생각하기도 했다. 백성들을 심판하러온 이 용감한 하나님의 사자는 헤롯안티파스픞 가차없이 책망했으며 결국 갇혀서 감옥에서 처형을 당했다. 예수와의 관계에 있어서 세례요한이 생각했던 메시아와 예수는 일치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3)예수의 전기를 재구성하기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예수의 설교는 요한을 이어받으면서도 쇄신된 것이었는데 차이점은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가 신비로운 임재로 변화되었으며 회개로의 부름을 가능하게 했던 은혜의 시간과 세례의 표적은 이제 끝이 났고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부터 점유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내일을 위해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점들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