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의 전래
- 최초 등록일
- 2021.07.26
- 최종 저작일
- 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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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학의 전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서학의 전래
1. 서학과의 첫 접촉
2. 지식인의 반응과 연구
3. 실학과 북학파의 등장
4. 천주교와 진산 사건
5. 서학과 천주교의 몰락
Ⅲ. 결론
본문내용
Ⅰ. 머리말
16세기 후반 명나라에 도착한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로 인해 시작된 서학은 천주교 선교사들을 통한 서양의 문물과 학술서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마테오 리치부터 시작된 서학의 움직임은 아담 샬(Adam Schall)을 비롯한 수많은 선교사들의 등장으로 연결되었다. 예수회에 소속된 선교사들의 움직임은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로 교체된 이후에도 계속되어 마테오 리치로부터 이어진 천주교 신앙을 효율적으로 전도하기 위해 서양의 여러 일면이 담긴 서적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서양의 학술과 문물을 서학이라는 용어로 소개했다. 조선 역시나 명말청초 시기에 한역 서학 서적들이 유입되면서 서학을 서양의 학문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서학은 양란 이후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계층의 분화와 양란을 통한 새로운 문화의 유입, 외세와의 충돌로 인한 가치관 변화에 시달리던 조선에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정치로부터 멀어져 있었기에 학술적으로 성리학적 사고관을 반성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일부 지식인들, 양란에서의 의병 활동으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광작과 도매업으로 새롭게 부를 축적하면서 새로운 경제, 사회 계층으로 성작하기 시작한 중인과 평민 계층은 17세기 이후 무너지기 시작한 양반 중심의 신분 사회 속에서 서학이 제시한 새로운 길에 주목했다. 일부 중인들 그중에서도 역관들은 연행사의 형태로 청나라를 왕래하면서 서양의 문물을 접하면서 자신들의 식견을 넓히는 것은 물론이고 연행과 관련된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면서 사회적인 영향력 역시 증대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중인 계층의 서학과 천주교 전파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고 영세 신자가 된 이승훈에게 대세를 받은 권철신과 이벽 등이 주로 중인 계층과 교류하면서 그들에게 천주교를 전도한 것, 천주교 교인들의 모임 장소를 제공하고, 조선의 초기 천주교 공동체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들이 중국어 역관 김범우(金範禹)와 상인 이단원(李端源)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참고 자료
저서
김선희, 『서학, 조선 유학이 만난 낯선 거울』, 모시는사람들, 2018
서영이, 『실학은 실학인가』, 예문서원, 2017
정성희, 『실학,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다』, 사우, 2018
홍경실, 『동학과 서학의 만남』, 한국학술정보, 2012
논문
이향만, 「서학 수용과 근대의식의 단초」, 『동양철학연구』28, 2002
참고 웹사이트
우리역사넷(http://contents.history.go.kr/fr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