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세사 과제 (내가 생각하는 고려사 중요 사건)
- 최초 등록일
- 2021.08.03
- 최종 저작일
- 20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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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중세사 과제 (내가 생각하는 고려사 중요 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문
Ⅱ. 본문
1. 무신정변의 과정
2. 서방의 설치
3. 이규보, 이인로 그리고 죽림고회
Ⅲ. 결론
본문내용
고대 중국, 진시황은 분열되어있던 중국을 통일했고 그는 도량형부터 단위까지 모든 것을 통일하려 노력했다. 또한 그는 왕권 강화와 국가 통치의 안정화를 위해 유학을 억눌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焚書坑儒(분서갱유)를 시행하였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살펴보면 진시황은 유학자들을 산채로 묻고 그들의 글을 태워버렸다. 그 과정을 통해 진시황이 원하는 국가통치의 안정화는 쉽게 이루어졌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인해 학문과 문학에 있어서의 발전은 멈추게 되었고 또한 진나라 외에 다른 나라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는 물론, 농업 등 실용적인 목적을 지닌 책을 체외하고 거의 모두 책을 불사르는 문명파괴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행위는 지식분자, 특히 유학을 신봉하는 선비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 원인이 됐다. 또한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중국은 물론이고 동양문화 전체에 너무나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사회면에서는 이로 말미암아 생각과 개성의 다양성을 존중하던 서양과 달리 동양인들은 획일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으며 문학에서는 분서갱유로 인해 정체되어 버린 유학의 발전을 위해 훈고학과 같은 불타버린 글들을 다시 되돌리기 위한 학문들이 생겨났고 발전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사라진 학문을 복기하는 데에 소요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분서갱유와 같은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은 무신정변이다. 고려시대 무신과 문신 사이에 차별이 극심하였고 무신들이 그에 격분하여 문신들을 모두 죽이거나 쫓아내고 정권을 차지한 사건으로 무신정권은 100년이나 지속되었다. 진시황이 즉위한 BC 247년부터 죽기까지 BC 259년까지 그가 유학자들을 탄압한 시간이 12년임을 보면 고려에서 무신정권이 유지된 100년의 시간은 한반도 학문의 발전에 엄청난 제동장치로 발생했을 것임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신들을 탄압하고 무신들이 정치를 주도하던 문학이 철저히 소외되었을 것만 같은 무신정권 때는 <동명왕편>, <제왕운기>와 같은 문학작품들이 쓰이고 서사문학이 발달하고 융성했던 시기였다.
참고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무신정권 [Military Rule, 武臣政權]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무신과 문신](한국 중세의 무신 정권) 에드워드 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