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도경, 옛 고려의 풍경을 중심으로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21.09.06
- 최종 저작일
- 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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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대 국토와민족생활사 A+ 레포트입니다.
내용 요약은 짧고, 느낀점 위주의 구성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송나라 사신단이 고려 예성항에 입항했다. 그 중엔 서긍도 있었다. 그는 한 달여 기간 고려를 돌아보며 선화봉사고려도경을 남긴다. 사신단을 맞이하는 고려 사람들과 조우한 예성항에서부터 고려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다. 송나라는 거대한 배인 신주를 비롯한 선단의 풍경으로 고려를 압도하려고 했던 듯하지만, 배에서 바라본 풍경과 그 감상에 대한 서긍의 기록을 보면 놀라움을 느낀 쪽이 고려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일만여 명이나 되는 고려 병사들이 무구를 갖추고, 갑주를 씌운 말을 타고, 깃발과 의장대와 함께 해안가에 늘어서 있었다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사신 접대와 호위를 위해 정말로 일만의 병사가 도열해 기다렸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서긍이 본 고려의 첫 모습은 이렇게 웅장한 것이었던 듯하다. 고려 병사들이 금고를 울렸다고 하고 있는데, 악기의 일종을 말하는 거라고 짐작했지만 정확히 무엇을 이르는 것인지는 찾지 못했다.
< 중 략 >
고려 백성들이 사는 집에 대한 기록도 특기할 만하다. '... 집의 모양은 벌집이나 개미구멍 같이 보인다.'는 내용을 문자 그대로 떠올리고 실제와 대응시키기는 쉽지 않지만, 땅에 바짝 붙여 아무렇게나 지은 가옥의 열악한 모습을 보고 개미구멍에 빗대었다고 생각하는 게 사실에 가까울 듯하다. 오늘날에 와서는 보통의 초가집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사진을 비롯한 각종 기록으로 접할 수 있는 보통의 조선 대 초가집의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헌데 나는 그 모습과, 전 대의 고려, 삼국 시대의 백성들이 지낸 거처의 모습은 같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발전사관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반대로 먼 옛날이 가까운 옛날보다 뛰어났다고 볼 근거도 (찾지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서긍의 말을 곧이 믿는다면, 고려 백성들의 삶이 비교적 윤택하고 풍요로웠노라 볼 이유는 (최소한 고려도경에 의하여서는) 찾기 힘들다고 본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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