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세계 속의 일본율령국가 연구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21.11.14
- 최종 저작일
-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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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대 일본사특강 레포트입니다.
교재를 바탕으로 요약, 의견으로 구성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북아시아는 크게 보았을 때 중국이 있는 대륙과 한국이 있는 반도 그리고 일본이 있는 열도로 구성된다. 그 속에서 오랜 시간 각자로서 존재해 왔다고 하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사실은 조금 더 복잡한 것 같다. 이를테면 신라, 일본과 함께 동해권을 이뤘던 발해를 이어받는다고 말할 만한 나라나 집단은 지금 유의미하게 남아 있지 않다. 한국은 언제부터 한국이었을까, 일본은 언제부터 일본이었을까 하는 질문도 어렵게 느껴진다. 지금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이, 고려가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 일부를 합치고 성립되었을 때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중 략>
그 흐름을 대륙과 반도의 세력을 포괄하는 동북아 정세로서 파악했을 때, 일본 국내외의 동향과 인과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속에서 왜는 후방의 주요 세력이자 포섭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막연한 친연 관계나 상하 관계가 아닌, 거래 상대로서 백제의 편에 섰다. 따라서 한반도의 싸움은 왜의 싸움이나 다름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선제적 조치로서 한반도에 출병해 백촌강 싸움을 치렀다. 싸움은 졌지만, 전후 동아시아 정세는 왜가 우려했던 바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왜는 다시 시작된 반도와 대륙의 대립에 개입할 수 있는 주요 세력으로서 그 위상을 높혔다. 한편 싸움의 패배는, 왜국으로서는 서둘러 율령국가를 정비해 바깥으로부터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가져왔다. 군사적 기술적으로 뛰어났던 백제 왕씨 유민들이 자연히 율령국가화의 사역마가 되었다. 율령국가의 성립이 가져온 소중화의식의 형성은 백제 왕씨가 번국의 왕족이라는 점과 맞물려, 왜가 신라와 이후의 반도 국가를 번국으로 보는 대외관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동아시아 차원에서 구현될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당시의 동아시아 국제 정세와 백제 왕씨와 고구려 씨족을 비롯한 여타 도래인 씨족들의 존재, 그리고 도호쿠의 에미시라는 이적의 존재로 뒷받침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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