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연구와 실지답사를 결합한 한, 중 국경문제의 재검토 요약본
- 최초 등록일
- 2021.12.06
- 최종 저작일
-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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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헌연구와 실지답사를 결합한 한, 중 국경문제의 재검토 요약본"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본문
Ⅰ. 한중 국경문제의 기원과 논점
Ⅱ. 제1편 『1712년 백두산 정계연구』
Ⅲ. 제2편 『한중 국경사의 의문점과 난점에 대한 탐구』
Ⅳ. 제3편 『간도문제 연구』
Ⅴ. 제4편 『백두산 답사기』
3. 맺음말 - 『백두산 답사와 한중 국경사』의 성과
4. 토론문
5. 부록 – 간도의 역사
본문내용
머리말
우리나라와 중국 측은 18세기 초 백두산정계비의 설립 이래 20세기의 ‘간도문제’에 이르기까지 장시간에 걸친 두만강·백두산 및 양국의 국경·영토를 둘러싼 국경 갈등을 겪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기존 연구에서 많은 성과물이 축적되어 있으나 이 논문에서 소개하는 이화자 교수의 『백두산 답사와 한중 국경사』는 이에 관련된 문제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면서 관련된 논점들을 다시 논의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4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편은 『1712년 백두산 정계연구』, 제2편은 『한중 국경사의 의문점과 난점에 대한 탐구』, 제3편은 『간도문제 연구』, 제4편은 『백두산 답사기』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그 배경을 우선 이해할 필요가 있어, 먼저 한중 국경 문제의 기원과 그에 관련된 여러 논점을 먼저 소개하도록 하겠다.
Ⅰ. 한중 국경문제의 기원과 논점
1712(숙종 38, 강희51)년 청의 강희제가 파견한 오라총관 목극등이 조선 측 관리와 함께 백두산을 답사하고 천지 동남쪽 분수령이 있는 곳에 ‘백두산정계비’를 세우고, 그 비문에 “서쪽은 압록이 되고, 동쪽은 토문이 되므로 분수령 위에 돌에 새겨 기록한다.”라고 표시한 다음 조선과 청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다시 확정하게 되었다. 청 입장에서는 그동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던 두만강 상류 지역에 집중한 실지 답사를 시행하였고, 조선에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이후 1880년대에 이르기까지 양국 간의 ‘경계’문제는 공식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두만강 남쪽의 조선 백성이 기근과 수탈을 피해 월경하여 북쪽에 정착하는 특히 대규모 집단 이주 사례가 급증하면서, 이를 둘러싼 조선·청의 갈등은 결국 두만강 경계문제를 둘러싼 국경 분쟁으로 비화하게 되고, 두 차례 국경 공동감계(회강)와 그 결과를 둘러싼 국경회담으로 전개되었지만, 양국이 합의할 수 있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였다. 두만강의 본류를 청은 두만강 상류의 지류 가운데 하나인 석을수로 보았고, 조선 측은 보다 북쪽의 홍토수로 보아 청의 입장을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참고 자료
문헌 연구와 실지 답사를 결합한 한중국경문제의 재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