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조선의 나선정벌 & 한국의 이라크 파병
- 최초 등록일
- 2003.12.04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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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나선정벌★
1) 제 1차 나선정벌의 원인과 조선군의 파견, 활약상
2) 제 2차 나선정벌의 원인과 조선군의 파견, 활약상
3) 당시 조선의 청나라에 대한 인식
★이라크 전쟁★
1) 이라크 전쟁의 제 1차 한국군 (비 전투병) 파견
2) 이라크 전쟁의 제 2차 한국군 (전투병) 파견
3) 현재 한국의 미국에 대한 인식
4) 이라크 전쟁의 제 2차 전투병 파견에 대한 나의 결정
5) 조선의 나선정벌과 한국의 이라크 전쟁
본문내용
★나선정벌★
나선은 러시안(Russian)을 한자음으로 옮긴 것으로서 러시아 사람들을 가리키며, 조선 효종 때 조선군이 청나라에게서 두 차례 출병요구를 받고 러시아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 싸움을 나선정벌이라고 한다.
1) 제 1차 나선정벌의 원인과 조선군의 파견, 활약상
러시아는 13C이후 몽고족의 지배 하에 있다가 15C후반에 몽고족을 몰아내고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17C전반에는 헤이룽강(흑룡강)유역까지 진출하였다. (러시아의 남진정책) 이들은 흑룡강 일대의 자원이 풍부함을 알아차리고, 탐을 내어1651년(효종 2년)에 흑룡강 무안의 알바진 하구에 성을 쌓고 그곳을 근거지로 삼아 모피를 수집하 는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부근의 수렵민들과 분쟁이 발생하였고, 더 나아가서는 청나라 군사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이듬해, 이들이 다시 오 소리강 하구까지 내려가 성을 쌓고 송화강 일대로 활동범위를 넓혀가자 청나라에서는 영고탑(청나라의 발상지)에 있는 군사를 보내어 공격, 축출을 시도하였지만 구식장비 의 청군으로서는 총포를 가진 러시아군을 당하지 못하였고, 번번이 패배하고 말았다. 이에 청나라는 조선 조총군의 위력을 알고 1654년 2월에 청나라 사신 한거원을 조선 으로 보내어 조총군사 100명을 뽑아 회령을 경유해 3월 10일 까지 영고탑 으로 보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