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사] 일제문화정치와 민족개량운동을 보는 2가지 시각
- 최초 등록일
- 2003.12.10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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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일제 문화정치의 실상
-문화정치를 추진하게된 배경
-문화정치 그 목적과 내용
⑴ 3·1운동으로 고조된 반일분위기 격감
⑵ 분할통치양식의 민족분열정책
-문화정치에 대한 견해
민족 개량주의 운동에 대해
-부르주아민족주의에 기초한 개량주의의 문제점
-전주화약과 개량주의의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본문내용
일제 문화정치의 실상
---문화정치를 추진하게된 배경
한반도 강점 후 1910년대 무단통치 강행으로인한 반일감정의 민족적 표출인 3·1운동으로 일본내의 무단통치 비판여론 조성.
3·1운동 후 민족애국운동의 조직화, 활성화로 인한 위기감 조성(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통제·독립신문발간·외교적노력, 무장독립군의 조직화를 통한 전투력 증강으로 국내 진공작전개시)
---문화정치 그 목적과 내용
⑴ 3·1운동으로 고조된 반일분위기 격감
'문화의 창달로서 민력의 충실'을 시정방침으로 표면적 유화정책으로서 고조된 반일감정을 격감시키기 위해 몇가지 개량적인 조치를 내세웠다. 관료주의와 형식적 행저의 타파를 통한 시정의 쇄신, 조선인 관리의 임용과 대우 개선을 통한 민족차별 철폐, 언론·출판·집회 자유의 인정을 통한 민의 창달, 교육·산업·교통·경찰·위생·사회제도 개선을 통한 민복 증진, 지방자치제의 실시를 통한 민퐁함양과 민력 작흥, 조선의 문화와 관습의 존중등을 내세웠으며 실제로 일제는 총독부관제를 개정하여 제도상으로는 문관(文官) 총독의 임명을 허용하고 헌병경찰제도를 보통경찰제로 개정하였으며, 또 조선인 관리의 임용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동아일보'.'조선일보' 같은 우리말 신문의 발행을 허가하는 등 각 방면에서 1910년대와는 다른 유화적인 정책을 취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