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말 프랑스의 왕권과 좋은 도시
- 최초 등록일
- 2004.01.16
- 최종 저작일
- 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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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 론
2. 국왕의 간섭
3. 사회 경제적 변화
4. 삼자동맹 (triple alliance) : 상인 부르주아-법률가-국왕관료
5. 결 론
본문내용
중세 도시에 있어서 13세기 후반으로부터 14세기 전반에 이르는 기간은 하나의 전환기였다. 이 시기에 인구와 생산력이 정점에 달하고, 경제적 위축이 시작되었으며, 장기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일반적인 위기에 더하여 도시 내부적으로는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되고 도시 외부적으로도 왕권의 개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기준으로 12-3세기의 중세 도시는 자유와 자치를 특징으로 하는 코뮌이나 콩쉴라, 혹은 프레보 도시로, 그리고 14-15세기의 그것은 왕권에 통합되어가는 '좋은 도시'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코뮌, 콩쉴라, 프레보 도시 등은 법률적 제도적으로 구분되는 데에 반해, '좋은 도시'는 당시 사람들이 관용적으로 사용하던 용어일 뿐, 법률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명확히 규정된 것이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 '좋은 도시'란 방어하기에 좋은 도시를 지칭하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 혹은 재판이 열리는 곳을 지칭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의하기 힘든 '좋은 도시'에 대해 르 고프는 한가지 유용한 기준을 제시했다. 그것은 '좋은 도시'라는 것이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좋다는 뜻이므로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걸식수도회가 한 도시에 자리를 잡기 이전에 그 도시에서 과연 구걸을 할 만 한지를 면밀히 검토해 본다는 데에 근거를 두고, 걸식 수도회가 많은 도시란 그만큼 '좋은' 도시였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1335년에 프랑스 왕국 내에는 총 226개 도시에 걸식 수도회가 있었는데, 4개의 걸식 수도회를 '부양'하는 도시가 20개 있었고, 3개의 걸식 수도회가 있는 도시가 17개 있었으며, 나머지 도시에는 1~2개의 걸식 수도회가 있었다. 여기서 3~4개 정도 되는 도시가 부유한 도시, 즉 '좋은 도시'였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도시들은 대개 삼부회에 참석하고, 지방의 중심도시로서 역할을 했던 도시들과 일치하고 있다. 14세기 프랑스 국왕에게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이 재정문제였음을 고려한다면, 국왕으로서는 모든 도시들 중에서도 경제적 상태가 좋은 도시, 그리고 방어하기에 좋은 도시를 삼부회에 소집하였을 것이고, 이 도시들을 장악하는 것이야말로 재정적인 면에서나, 군사적인 면에서나 효과적인 왕권강화 수단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도시'가 왕권에 종속되는 과정은 왕권 강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