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사회] 정신대 할머니들의 진상과 현실에서의 위상 그리고 한국의 대응
- 최초 등록일
- 2004.02.06
- 최종 저작일
- 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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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정신대-일본군 위안부란 무엇인가?
2. ‘일본군 위안부‘ 범죄에 대한 진상
- 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의 동기와 목적
- 군 위안부 강제동원방법
- 피해현황
- 위안부의 규모와 배치지역
- 위안부의 당시 생활
(강제동원관련에 대한 증언들)
(위안소가 분포됐던 지역과 위안부생활에 대한 사진 및 증언)
3. 전쟁 종결 후 위안부들에 대한 취급과 생활처지
- 귀향 당시의 위안부들이 겪어야했던 문제
- 할머니들의 건강문제
(증언. 할머니들의 건강문제와 사회의 인식 , 피해자수)
4. 할머니들의 현황 및 한국정부의 활동
- 할머니 복지 활동 : 생존자 복지 사업과 한글 수업, 그림 수업
- 할머니들의 생활 지원을 위한 각계의 활동
: 한국정부의 지원, 시민모금, 정대협 후원
- 한국정부의 활동과 입법활동
5. 결과추론
본문내용
2. ‘일본군 위안부‘ 범죄에 대한 진상
일본군의 성 노예로 조선의 어린 소녀들을 강제동원하고 위안소에 집단적으로 감금, 반복적으로 성폭행 한 행위는 명백한 범죄에 해당되고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1992년 1월 10일 위안부 범죄 사건과 관련된 일부 공적 자료가 일본 방위청의 문서고에서 발견됨으로써 이 범죄사건의 주범이 바로 일본 정부와 군부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 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의 동기와 목적
당시 일본의 매춘업자들이 매춘부를 데리고 군대를 따라 매춘업을 경영하였으나 일본군은 봉급이 매우 적어 매춘을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군의 주둔지 및 전장에서 러시아 여성들에 대한 수다한 강간 행위를 감행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성병이 만연하여 전력이 크게 감소되었다. 당시 전사자는 1,387명, 전상자는 2,066명. 부상 및 병자는 941명 , 성병으로 전장을 이탈한 자는 2,012명으로 전사자보다 많았다.
1931년 9.18사변이 있은 다음해인 1932년 1월 28일 제1차 상해 사변을 조작했는데 이때 파견군 참모 부장이었던 오까무라 중장은 지사에서 군대 위안부를 보내줄 것을 요청. 조선의 어린 소녀들을 강제동원하여 그들의 성노예로 전략시켰다.
발견된 자료에 의하면 일본 정부와 군부는 “종군위안부”제도의 도입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로 일본군 장병들의 사기 제고.
둘째로 점령지들에서 일본군 장병들에 의한 강간과 이로 인한 성병 만연의 방지.
셋째로 현지 주민들에 대한 폭행과 약탈을 방지하고 점령지들에서의 치안유지.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