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청관계와 병자호란 레포트(A+)
- 최초 등록일
- 2023.01.03
- 최종 저작일
- 2022.10
- 1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소개글
호란을 주제로 조선과 청나라 그리고 후금의 정세까지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정묘호란 전부터 병자호란 후 까지 정리되어 있습니다.
목차
1. 호란 전의 명, 후금, 조선의 정세 ............................................................ 1
2. 정묘호란의 발생 ................................................................................... 4
3. 관온인성황제, 홍타이지 ......................................................................... 6
4. 병자호란의 발생 ................................................................................... 7
5. 호란 이후의 조선과 청 ........................................................................ 10
본문내용
머리말
일찍이 대국이자 상국으로 자부하면서 여진족을 ‘오랑캐’로 여겼던 조선은 1627년 정묘호란을 맞아 후금을 ‘형’으로 대접하기로 약속한다. 이후 조선은 ‘명의 신하’이자 ‘후금의 아우’로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조선은 1636년 병자호란으로 무너지면서 ‘청의 신하’로 전락했다. 그리고 병자호란 이후 50년 가까이 지난 1685년(숙종 11) 6월, 청의 강희제는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조선 사람들은 타고난 성품이 교활하고 간사하므로 만약 요청하는 대로 다 들어주면 훗날 반드시 업신여기고 소홀히 함이 있을 것이다”.
본 발표에서는 이러한 반전이 나타난 조선과 여진(후금,청)과의 관계는 병자호란을 전후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고 변화되어왔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1. 호란 전의 명, 후금, 조선의 정세
1.1 떠오르는 여진족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전반에 걸쳐 동아시아의 정세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명과 조선이 임진왜란으로 말미암아 극도로 피폐되어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을 때, 만주에서는 누르하치가 여진족의 여러 부족을 어울러서 큰 세력으로 성장한 다음 마침내 후금국을 건설함으로써 명·청 교체의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조선과 후금의 관계도 크게 달라지게 됐다. 따라서 여진족의 발전과정과 더불어 후금 건국의 경위와 그 과정에서 조선, 명과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명 정부의 여진 통치책은 중국 역대왕조의 것을 답습하여 기미책을 썼는데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는 여진족의 추장에게 명의 황제가 직접 관직을 수여했다. 후대에 이르면 공이 크거나 세력이 강한 추장에게 도독·도독동지·도독첨사로 봉하거나 특별히 우대하는 뜻으로 높은 직함을 내리고 일반적으로 그것을 세습하게 했다. 그러나 반대로 명 정부에 거역하고 변경을 침략하여 사람과 가축을 겁략하는 일이 생길 경우, 대군을 동원하여 정벌했다. 따라서 관직을 내리는 것은 명에 예속하여 법도를 지켜 조공을 바치고 충성을 다하는 대가였다.
여진족은 중국인과의 교역으로 얻은 소와 철제 농기구를 써서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업생산을 증대시켰고 다량의 은냥을 얻게 됨으로써 계층변화가 나타났다. 이에 은냥을 많이 가지게 된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어 마침내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