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중일의 상호인식의 흐름과 그것이 왜란과 호란에 미친 영향
- 최초 등록일
- 2023.01.08
- 최종 저작일
-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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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시대의 한중일의 상호 인식을 알려면 먼저 조선의 지정학적 위치를 알아야 한다. 일단 한반도는 중국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중요한 안보 유지를 중국의 왕조들에게 사대하고 조공을 바치며 안보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많은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사대는 큰 나라를 섬기는 생존기술이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강대국을 쫓는 사대주의와는 다르다는 차이를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한반도의 약 45배인 중국은 중화사상(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는 것)과 중화질서(주변 오랑캐 국가들을 아우르는 질서)가 자리 잡고 있었고, 당연히 한반도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에 일본은 중국과 인접해있는 한반도와 다르게 바다라는 천혜의 요새가 있어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영향력이 차단되어 있었다. 현실적으로 중국이 바다를 건너 일본을 침략하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일본은 "일출처천자 일몰처천자"(해뜨는 곳의 천자가 해지는 곳의 천자에게)라는 문구를 국서에 써서 보낼 정도로 모든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적 행운이 있었기에 중국의 크게 받지 않고 중국과 자신들이 대등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었다. 명 또한 원대 이전까지는 일본을 '군자의 나라'이자 '예의의 나라'라고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명 초기에 광동-상동 연안에서 왜구의 피해가 심해지가 일본에 대한 인식은 증오와 공포로 바뀌게 된다. 반면 일본과 조선은 서로에 대한 우월의식이 나타났는데 조선은 일본을 '섬 오랑캐'를 내지에 포용함으로써 신민으로 삼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조선이 '대국'이자 '상국'으로 자처하면서 일본을 어루만지고 다독거린다는 입장에 있었으며, 일본과 달리 성인의 교화를 받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일본도 스스로를 '신국'이자 명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국가라고 여기며 조선에 대한 우월의식을 지녔다. 이처럼 조선과 일본은 서로에게 우월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서로에 대한 인식에 제일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마도 지정학적 특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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