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통일 신라의 의식주 문화
- 최초 등록일
- 2004.03.23
- 최종 저작일
- 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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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통일 신라의 의생활
2. 통일 신라의 식생활
3. 통일 신라의 주거생활
본문내용
통일신라의 의생활 문화
통일신라시대의 서민들의 복식은 대체로 삼국시대와 유사하였다. 다만 친당 정책의 영향으로 귀족계급의 복식은 당나라의 것을 들여와서 사용하였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의복의 형태보다는 옷감과 색깔로 상하를 구분하였다. 지배층의 의복이 화려하고 후기에는 피지배층까지 허식화되어, 흥덕왕 9년(934년)에 10계급 착용규정을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고유복식의 기본 구조는 상의는 저고리로서 직령교임제이고 좁은 소매가 달려 있으며 대를 둘렀고 섶·도련등에 선을 대었다. 하의는 바지로서 치마보다 활동이 편하도록 가랑이가 따로 떨어진 형태였다.
관모는 삼국시대 복식의 기본형 관모인 책, 절풍, 조우관 등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신라시대의 관모로 특징적인 것은 금관과 복두가 있다.
금관은 중국의 것에 비해 금관의 영락(구술을 꿰어 만든 장식품)과 곡옥(굽은 옥)의 금색과 옥색의 조화, 착용자의 동작에 따라 움직이는 동적인 미와 정지시의 정적인 미, 기술적인 세공미등이 뛰어 났다.
복두는 중국에서 생겨난 관모로서 태종무열왕 초에 사용하기 시작해서 흥덕왕 9년에 모든 계급 남자들의 쓰개로 규정되었다.
<중 략>
통일신라시대의 주거 생활 문화
통일 신라의 궁궐과 가옥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삼국사기는 신라의 거주환경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어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아주 구체적으로 얻어낼 수 있다. 신라인들의 집은 계급에 따라서 큰 차이를 보였다.
삼국사기의 이병도 번역본을 보면 그 계급에 따라서 아래와 같이 계층을 두어 가옥구조나 방의 구조 병풍의 장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진골의 방은 길이와 너비가 24자를 넘지 못하며, 중국 기와를 덮지 않고, 날아갈 듯이 높이 들린 처마(비첨)를 하지 않으며, 조각한 懸魚(현어: 고기 모양을 만들어 매다는 것)를 달지 않으며, 금은․놋쇠․돌과 5색으로 장식하지 않는다.
참고 자료
「한국사의 이해」,윤경호 저, 2001년, 느티나무 출판사
한국의 전통 초가 윤원태 도서출판 재원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