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 한국사 뿌리깊은 이야기 과제 한국사 속 인물의 조사 및 재평가
- 최초 등록일
- 2023.05.08
- 최종 저작일
- 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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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재평가 인물의 선정 동기
Ⅱ. 본론
1. 최명길의 생애
2. 최명길의 업적
3. 병자호란
Ⅲ. 결론
1. 새로운 관점에서의 해석
2. 최명길에 관한 재평가
3. 최명길과 병자호란이 주는 교훈
본문내용
조선 인조 14년 (1636년), 병자호란이 끝난 후 대응 방식에 대한 평가 작업으로 제기된 주장 중 하나인 주화론을 주장하고 척화론의 대표자인 김상헌과 대립하는 주화파 최명길을 한국사 속에서 재평가되어야 하는 인물로 선정하였다. 몇 년 전 주화론을 주장하였던 대표적 인물인 최명길과 척화론을 주장하였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인 김상헌의 대립을 주된 갈등으로 하고 당시 시대인 조선 인조 14년에 청나라가 조선으로 침입하였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여 제작되어 384만 명의 관객 수를 달성하였던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를 매우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기에 재평가할 인물을 최명길로 선정하게 되었다.
북방 오랑캐인 여진족과 군신의 의리를 맺지 않겠다고 주장한 사림 사회의 공론화된 척화론을 주장하였던 김상헌과 대조되는 최명길은 막대한 피해가 따를 것이 분명한 북방 오랑캐와의 전쟁을 피하고 청나라와의 화의를 모색하여 전쟁을 종식해야 한다는 주화론을 주장하였지만, 당시 인조를 포함한 대부분의 조선 조정의 인물들이 최명길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관점을 가진 이유로 “최명길은 역적이다.”라며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 당시 병자호란에서 패배하고 조선인 약 50만 명이 청나라로 끌려갔다는 병자호란의 참담한 결과를 보면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최명길의 주화론이 옳았고 처음부터 주화론을 이끌어 나갔어야 했다고 판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최명길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등 잦은 전투의 패배와 청나라의 끊임없는 공격으로 끝내 청나라에 항서를 직접 작성하고 전달하여 인조를 무릎 꿇게 한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기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과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최명길이라는 인물은 긍정적, 부정적 평가로 엇갈린다고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