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의 복식과 미용
- 최초 등록일
- 2004.04.28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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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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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문화사적 배경
2. 복식사적 배경
1) 복식금제령의 제정
2) 복식의 종류
▣ 통일신라시대의 복식 그림
3. 머리형태
1) 중국 당의 영향
2) 여인의 머리모양
3) 머리장식
4) 복두와 금관
4. 화장형태
본문내용
1) 복식금제령의 제정
통일을 이룩한 후 신라는 여러 가지 제도를 정비하고, 경제 생활의 안정과 당나라와의 빈번한 교류를 통하여 태평성세를 누리며 모든 문화가 찬란하게 발전하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자 복식 제도가 문란해져서 상하와 존귀의 구별없이 사치에 흐르고 예절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고 골품제도에 맞지 않는 의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제 42대 흥덕왕 9년에 ‘복식금제령’을 내려 복식착용 규정을 상세하게 설정하였다. ‘복식금제령’에서는 20종의 복식에 대하여 10계급의 착용 규정을 정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사치 억제라는 면에서 이루어진 것이나, 한편 계급적인 것이 두드러져 있어, 마치 골품제도를 연상하게 하는 동시에 그 당시 신분 계급의 발달상을 여실히 볼 수 있다. 또한 통일 신라시대때는 당과의 외교정책으로 인하여 당나라 의복이 유행하여 통일신라 시대의 복식은 호복 계통의 복식을 기본으로 중국복식이 들어왔다. 그러므로 삼국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복두(幞頭)를 비롯해 반비(半臂), 배당(褙襠), 표(褾)등의 새로운 복장이 등장하였다. 따라서 복식 금제령에 나타난 20종의 복식중에는 당나라의 것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복식에서는 계급의 변분화가 심하였으나 이러한 제도나 격식을 따르고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는 것은 상류 귀족층이었을 뿐이며, 서민층에서는 국속의 긴 저고리에 대를 하는 상고복(上古服)을 그대로 입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