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은 가짜인가
- 최초 등록일
- 2004.05.09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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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일성의 진위논란에 관한 글입니다.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교양수업을 듣는 분 중에 이런 리포트가 필요하신 분은 받아가시면 괜찮을 겁니다.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심사숙고해서 쓴 글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북한을 통치했던 김일성은 가짜다
3.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4. 보천보전투
5. 나의 김일성의 진위에 대한 의견과 그의 항일운동의 위치에 대한 생각
본문내용
동북항일연군은 일본군과 경찰을 상대로 하여 계속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조선국내 진공작전을 논의하였다. 김일성의 주도하에 조선의 보천보에 대한 공격이 결정되었다. 보천보 즉 보천면 보전은 일본인 50명, 조선인 1323명 중국인 10명 등 합계 308호 1383명이 거주하고 5명의 경찰이 주재소에 있는 작은 시골 도시였다. 그러나 혜산으로부터 2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습격의 소식은 삽시간에 조선 전역으로 전해질 수 있는 곳이었다. 보천보전투는 1937년 6월 4일 김일성이 지휘하는 약 100명의 항일유격대가 동원된 진공전투로서 일본 경찰지서 관공서를 파괴 방화하였다. 미리 협력을 하기로 약속을 해둔 조국광복회의 청년 80여명도 가담하였다. 기관총 2정의 공격을 피해 경찰 5명은 모두 도망갔으나 주재소의 총기고에서 경기관총 한 자루, 소총 6자루, 권총 2자루, 탄약 수백 발을 탈취하였으며 약간의 점포 주택에 침입하여 현금과 물자를 탈취하였다. 습격대는 오후 11시 철수하였다. 혜산진서에서는 5일 오까와 경부가 인솔하는 31명의 경찰병력과 수비대 60여명, 헌병대 8명 등이 출동하여 김일성부대를 추격하였다. 김일성부대는 오까와 부대와 접전하여 전사지 7명과 부상자 14명을 내었다. 당시 국내 언론들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동아일보는 1937년 6월 5일자로 두 차례에 걸쳐 호외를 발행하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김일성의 이름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 자료
http://www.gangbk.com/gyoyang/bukhan/북한%204%20김일성연구이명영교수.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