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등소평의 문화대혁명
- 최초 등록일
- 2004.05.18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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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1. 전면정돈의 진행
2. 정돈의 성과와 정돈의 중단
맺음말
본문내용
머리말
10년간 지속된 문화대혁명의 결과로 당시 중국의 상황은 여러 분야에서 침체에 빠져있었다. 강청(江靑)집단 四人幇으로 불림:王洪文(왕홍문)·張春橋(장춘교)·江靑(강청)·姚文元(요문원)
은 ‘혁명’이라는 명목으로 생산을 파괴하는 각종 황당무계한 논리들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생산력이 생산관계,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회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역사유물주의의 기본원리를 소위 ‘수정주의의 생산력 제일주의’로 해석하고 제멋대로 비판해서 사상적으로 큰 혼란을 빚어 냈다. 그들은 심지어 60년대초에 제정된 업무조례인, 「공업70조」,「상업40조」,「수공업30조」, 「고급교육60조」, 「과학기술70조」, 「문예8조」 등과 같이 이미 실천으로 증명된 정확하고 긍정적인 작용을 한 많은 조례들이 모두 ‘수정주의’, ‘자본주의의 부활’이라는 ‘반동적인 조례’로 비판받고 부정되었다. 이러한 부정은 업무와 생산에 막대한 혼란과 손실을 가져왔고, 교육과 예술분야에 파괴를 가져왔다.
1975년 초에 등소평은 중앙중공 군사위원회 부주석 겸 중국인민해방군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어 등소평은 중앙중공 부주석 및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 되었고 며칠 후에 열린 제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무원 부총리 중에서 서열 1위로 임명되었다.
참고 자료
1. 이창우, <中共 文化大革命의 序說的 硏究>, 영남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75
2. 추연홍, <중국의 정치권력 변동 연구> : 등소평 체제를 중심으로, 공주대 석사학위논문, 1999
3. 진춘밍, 이정남 外 역,《文化大革命史》, 나무와 숲, 2000
4. 등용, 임계순 역,《불멸의 지도자 등소평》, 김영사, 2001
5. 아마코 사토시, 임상범 역, 《중화인민 공화국 50년사》, 일조각,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