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삼국통일을 바라보는 시각
- 최초 등록일
- 2004.05.25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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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통일에 대한 시각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삼국통일이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도 포함시켰습니다.
목차
Ⅰ.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
Ⅱ. 삼국통일을 살펴보기 전에
Ⅲ. 삼국통일을 보는 관점 1 - 삼국통일을 긍정하는 입장
Ⅳ. 삼국통일을 보는 관점 2 - 삼국통일을 부정하는 입장
Ⅴ. 삼국통일의 자주성
Ⅵ. 삼국통일의 의의
Ⅶ. 삼국통일의 교훈
본문내용
Ⅰ.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
648 진덕 여왕 재위 2년. 나당 동맹 성립(김춘추, 당 태종과 조약 체결)
660 7월, 백제 멸망.
668 9월, 고구려 멸망
당, 평양에 안동도호부 설치.
676 신라, 삼국 통일(임진강∼함남 덕원)
(735 당, 발해의 선장을 우려하여 신라의 평양성 이남 영유권 공인. 648년에 합의한 조약이 현실화 됨.)
Ⅱ. 삼국통일을 살펴보기 전에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평가는 발해에 대한 시각과 맞물려 있다.
'발해사가 어느 국가의 역사에 귀속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팽팽하다. 중국 학자들은 대조영(발해의 건국자)을 말갈인으로 파악한다. 중국은 발해를 '당대 말, 말갈인이 조국(중국)의 동북지역과 소련·연해주의 광대한 지역에 걸쳐 세운 지방 민족 정권'으로 본다. 발해사를 중국사에 포함시켜 그 지역 민족에 대한 중국의 지배권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일본은 발해를 '미개한 퉁구스계 민족과 말갈인이 만주 땅에 건설한 국가'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만주 침략을 정당화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발해가 '고구려와 당의 문화적 식민지'였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남북한 학자들은 발해의 왕실 및 지배집단을 고구려 인이라 단정하고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본다. 따라서 '통일 신라'에 부여되어 있던 '한반도의 최초 통일 시기'라는 의미는 고려의 성립이 이루어진 10세기로 내려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