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미당 서정주 평가
- 최초 등록일
- 2004.06.11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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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정주의 친일행각에 촛점을 맞춘 레포트 입니다.
목차
1. 서정주 약력
2. 시인 서정주의 작품세계
3. 친일파 서정주의 친일행각
4. 시인 서정주? 친일파 서정주?
5. 맺음
본문내용
① 미당의 행보
서정주는 첫시집 <화사(1938)> 에서부터 마지막 15번째 시집 <80 소년 떠돌이의 시(1997)> 에 이르기까지 정열적으로 새로운 시세계를 일궈내 해외에 대표 한국시인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시의 학교”, “시인 중의 시인”, “큰 시인들 다 합쳐도 미당 하나만 못하다”, “시의 정부 (政府)” , “한국이라는 부족 언어의 주술사” , “시선(詩仙)”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시의 최고 경지를 일궜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이는 동국대 및 서라벌예대 교수로 재직하며 배출한 제자 문인들이 현재 문단의 중추를 이루는 등 많은 시인과 문인제자를 양성 한 몫도 크다 하겠다. 등단 이후 60여년간 미발표작을 포함하여 1천편에 가까운 시를 다산(多産)하였는데 이는 국내에 유례가 없고, 외국에서도 독일의 괴테나 헤르만 헤세 정도가 비견될 정도이다. 한국전쟁 후 반공 국시가 더욱 강화되면서 그의 시적 경향이 남한 문학사의 주류로 자리잡았고, 이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무려 10편 가량의 시가 실리는등 다수의 작품이 교과서에 수록됨으로써 국민의 보편적 정서에도 상당히 깊숙한 영향을 주었으며 한국 문학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소설의 김동리와 비견되는 시문학의 교주(敎主)로 ꡐ미당 사단ꡑ이라는 거대 계보가 형성됐는데 이는 교수시절 기른 이원섭, 이제하, 황동규, 고은, 김초혜 등 수많은 제자와 신춘문예의 심사위원으로써 등단시킨 문인등이 학계 언론계 및 주류 문단의 중진으로 포진하고 각종 문인협회조직에의 참여, 정권의 비호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룬 결과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