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농장과 양전사업
- 최초 등록일
- 2024.01.09
- 최종 저작일
- 20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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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조선시대 농장의 확대
2. 중앙 관료의 농장
3. 조선시대의 양전 사업
4. 양전법의 문제점
5. 전품의 재조정
6. 양전 사업과 관련한 기록
본문내용
조선시대에는 농업이 매우 중시가 되었고요 모든 것의 기본은 토지라는 개념이 통용되던 시대 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상류층들은 농장을 확대하였고요 중앙에서는 양전사업을 통하여 토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게 됩니다
● 조선시대 농장의 확대
조선의 양반 관료들은 노비를 적극 활용하는 가운데 재산을 늘리면서 농장을 확대하게 됩니다.
과전법을 통해 타인 소유의 토지에서 전조(田租)를 수취하던 조선의 양반 관료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토지를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노비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들은 노비와 토지를 결합시켜 농업 경영을 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노비와 토지가 결합된 형태를 농장이라 일컬었다. 조선 전기 농장들은 소유자의 정치적 성향과 농업 경영의 내용, 농장 분포 지역과 규모, 생산 관계 등을 고려할 때 크게 2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왕실과 중앙 관료의 농장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의 품관, 향리층의 농장이었다.
조선 전기 훈구파로 대표되는 중앙 관료와 왕실 농장은 그들의 정치적 권력을 기반으로 전국 여기저기에 대규모로 개설되었다. 이들의 농장이 가장 많이 산재한 곳은 경기도였는데, 주로 정치 권력에 편승하여 농장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 관료들은 대부분 부재지주로 여기저기에 산재한 농장을 관리하기 위해 관리인을 파견하였다. 이와는 달리 재지 사족과 품관, 향리층의 농장은 집안에서 세습되는 토지를 상속받거나 개간, 매득 등의 방법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러한 농장에서의 노동력은 노비 노동에 주로 의존하였지만 몰락한 양인 전호나 국역 부담을 피하기 위한 투탁(投託)한 양인으로 보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농장의 농업 경영은 점차 노동집약적 농업 혁신, 직영지적 부역 노동의 비효율성, 노비의 대규모 도망 등으로 인하여 16세기 말부터 점차 해체되어 갔다.
조선시대 농장의 확대와 관련하여 성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였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