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조봉암의 진보의 사형
- 최초 등록일
- 2004.09.03
- 최종 저작일
- 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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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미나 준비때문에
얼마전 작성한 글입니다
대한민국의 첫 '진보'를 외친 조봉암 선생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나라와 신념을 위해 일평생 일하 사형언도를 받은 조봉암. 일제강점기에 그는 조선공산당에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수차례 옥고를 치르면서 갖은 고초를 겪은 후 해방이 되자 초대 농림부 장관과 국회부의장등을 지냈다. 그리고 2대와 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 되지는 못했지만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간첩죄‘? 실로 어처구니 없을 따름이다.
그에 대해 말하기 전에 나는 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조봉암이란 인물에 대해 고등학교 재학시절까지만 해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역사학입문 수업시간에 조봉암에 대해 다룰때 처음 그를 접했고,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 흔히 좌우와 이념이 대립되는 시대에,[한국전쟁 직후라 남한은 극우가 주를 이뤘을 것이다.] 좌우 이념대립을 넘어 진보를 부르짖은 조봉암,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조봉암에 대해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진보당이다. 1956년 11월 10일에 결성된 혁신주의 정당 ‘진보당’은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많은 혁신적인 기치를 내걸었다.
『진보당 발기취지문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과 민주주의 쟁취의 역사적 성업인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급 환기, 계승하여 우리가 당면한 민주 수호와 조국통일의 양대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혁신적 신당을 조직하고자 잉에 분연히 일어섰다. 우리는 진정한 혁신은 오로지 피해를 받고 있는 대중 자신의 자각과 단결 위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관료적 특권정치, 자본가적 특권 경제를 쇄신하여 진정한 민주책임정치와 대중 본위의 균형있는 경제체제를 확립할 것을 기약하고 국민대중의 토대 위에 선 신당을 발기하고자 한다.
참고 자료
kbs 인물 현대사
청년을 위한 한국 근현대사
1950년대 후반기 사회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