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인물연구 - 김옥균
- 최초 등록일
- 2004.09.20
- 최종 저작일
- 2002.12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목차
1. 김옥균 연보
2. 인간 김옥균
3. 개화당의 형성
4. 갑신정변의 계기
5. 개화당의 자주근대화의 노력과 청국의 방해
6. ‘위로부터의 대개혁’ 모색
7. 갑신정변의 배경
8. 갑신정변의 준비
9. 새정부 구성과 14개조 정강
10. 개혁의 실패... ‘삼일천하’
11. 갑신정변의 실패 진행 현황
12. 갑신정변의 의의와 한계
13. 김옥균과 갑신정변
14. 김옥균의 죽음
본문내용
김옥균은 조선 말기의 정치가로서 갑신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고 혁신 정치를 펴려다 실패하여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시대의 전사였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총명했던 그는 일찍부터 개화 사상에 눈을 떠 일본의 발달된 문명을 흠모하고 조선에서의 개화 운동을 정치적으로 펴 나가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당시 조선은 일본과 청나라 등 열강의 간섭과 이권 다툼 속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또 개화 운동에 대한 인식도 거의 전무하였고 조정은 정권을 유지하려는 사대파 정치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따라서 김옥균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빠른 개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그는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등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모아 독립당을 조직하고 정변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우정국 사건으로 정권을 장악한 김옥균은 사흘만에 일을 그르치고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준비가 미흡한데다, 민중의 지지가 전혀 없었으며 외교 상황에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훌륭하고 높은 뜻이 있다 할지라도 큰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범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를 빨리 개화시켜 자주 독립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김옥균의 뜻은 좋았지만 그는 너무 서둘렀기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만 것이다.
또 김옥균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외세의 힘을 빌려 거사를 도모했다는 점이다. 그는 처음에 일본의 힘을 빌려 정권을 잡았다가 망명 후에는 다시 청나라의 힘을 빌려 일어서려고 하였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 왔듯이 외세를 이용하여 자국의 일을 성공시킨 사례는 거의 없다. 자주 정신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옥균이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는 까닭은 그가 어둠을 뚫고 우리 나라로서는 처음으로 개화를 통한 자주 독립을 얻으려 했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