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현대한국의사회문화사 - 발제 보고서 (정은이, 북으로 간 재일조선인 째포의 삶)
- 최초 등록일
- 2024.05.30
- 최종 저작일
-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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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연세대학교] 현대한국의사회문화사 - 발제 보고서 (정은이, 북으로 간 재일조선인 ‘째포’의 삶)" 관련 자료입니다.
목차
1. 실시 배경
2. 귀국사업
1) 진행 과정
2) 재일조선인 귀국자의 특징
3. 귀국자의 삶
4. 북한 사회에 미친 영향
1) 경제적 영향
2) 사회적 영향
5. 맺음말
본문내용
*1959년부터 1984년까지 북송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가게 된 해외 거주 조선인을 북한에서는 ‘귀국자’, 일본은 ‘귀환자’, 남한에서는 ‘북송동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지칭하고 있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원문에서 사용한 ‘귀국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1. 실시 배경
한국전쟁 직후, 북한의 인구는 감소는 큰 문제였다. 1961년판 『조선중앙연감』에 따르면, 1949년 말 약 962만 2천 명이던 인구는 전쟁 직후 1953년 12월 849만 천 명으로, 대략 113만여 명이 사망 혹은 이주로 북한에서 사라졌다. 기존의 인구도 남한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던 북한은 이로 인해 전후 복구와 국가 안보의 위기에 봉착했다. 심지어 중국인민지원군이 1958년에 완전히 철군하면서, 전후 복구의 핵심인 청장년층 남성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일본 정부는 재일조선인의 귀국을 전후처리의 일환으로 인식했으며, 일본의 우익 진영 은 미국의 암묵적인 동조 하에, 사회적으로 문젯거리인 非국민 재일조선인의 수를 줄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고, 진보 진영 은 사회주의 북한의 건설에 재일조선인이 공헌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자주적인 성향을 가진 데다가 그 규모도 큰 조선족의 수와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방책으로서 북한의 귀국사업에 적극 협력했다. 이렇게 북한과 각국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재외조선인의 귀국 사업이 진행되었다.
2. 귀국사업
1) 진행 과정
이러한 배경에서 1950년대 후반부터 북한은 일본과 사회주의 동맹국들을 중심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와 고아들을 대상으로 귀국사업을 펼치기 시작하는데, 이 사업으로 약 35만 명이 북한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 자료
정은이, 「북으로 간 재일 조선인 ‘째포’의 삶」,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60년대』, 창비, 2016.
박정진, 「북한의 대일접근과 재일조선인 ‘북송(귀국)문제’」, 『북한연구학회보』 vol.15, 2011.
테사 모리스 스즈키, 박정진 역, 『봉인된 디아스포라』, 제이앤씨, 2011.
“재일동포 북송 60년”, 『주간조선』 2539호, 2018.12.31.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3&nNewsNumb=00253910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