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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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한영우선생님의 역사학의 역사를 텍스트로 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의 역사서술에 관한 보고서..
역사서의 편찬 양식을 알 수 있다.
역사서술방법
역사학 입문
조선시대의 역사서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목차
왜란(倭亂) 직후의 애국적인 역사서술
오운(吳澐)의《동사찬요(東史簒要)》
정구(鄭逑)의《역대기년(歷代紀年)》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
조정(趙挺)의 《동사보유(東史補遺)》
호란(胡亂) 이후의 반청의식과 강목체(綱目體) 역사서술
유계(兪棨)의 《여사제강(麗史提綱)》
유형원(柳馨遠)의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와 《동국사강목조례(東國史綱目條例)》
허목(許穆)의 《동사(東事)》
홍여하(洪汝河)의 《휘찬여사(彙纂麗史)》와 《동국통감제강(東國通鑑提綱)》
홍만종(洪萬宗)의 《순오지(旬五志)》와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摠目)》
임상덕(林象德)의 《동사회강(東史會綱)》
◇참고자료◇
#붙임 1
본문내용
왜란(倭亂) 직후의 애국적인 역사서술
동아시아 세계의 국제 전쟁인 임진왜란은 조선의 선비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왜란 직후 사회의 윤리는 땅에 떨어지고, 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의 정치체제도 극도의 혼란을 맞이하였다. 왜란 이후에는 국력을 증강하고 애국심을 고양해야 한다는 반성과 함께 왕도정치뿐 아니라 부국강병에도 힘써서 더 이상 다른 나라에 짓밟히지 않을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의 정치 지배세력사이에서는 공리(功利的)인 사고가 일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으로 전쟁 후의 국가 재건을 위한 애국심의 고취와 함께 과거의 만주지역을 차지하였건 자랑스러운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등의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고대국가의 강토를 재점검하려는 역사지리(歷史地理)의 연구의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의식을 고취하는데 앞장 섯던 이로는 오운(吳澐), 정구(鄭逑), 한백겸(韓百謙), 이수광(李晬光), 조정(趙挺) 등이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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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의 재조명 〈국사관논총〉 30 : 최영희, 국사편찬위원회, 1991
※ 조선정치사 상·하 : 한국역사연구회 편, 청년사, 1991
※ 조선후기 사학사 연구 : 한영우, 일지사, 1989
※ 한강 정구의 학문과 역대기년 〈한국학보〉 45 : 김항수, 일지사, 1986
※ 한백겸의 동국지리지 〈역사학보〉 93 : 윤희면, 역사학회, 1982
※ 한국고대국가발달사 〈한국민족문화사대계 1〉 : 김철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64
※ 한국사 신론(한글판) : 이기백, 일조각, 1999
※ 지봉과 정치사상 〈한국학〉 20 : 강주진, 중앙대학교 영신아카데미 한국학연구소, 1979
※ 반계 유형원의 사회개혁사상 〈역사학보〉 45 : 정구복, 역사학회, 1970
※ 유형원의 동국여지지에 대한 일고찰-역사의식과 관련하여 〈청계사학〉 6 : 박인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9
※ 이야기 인물한국사 5 -허목: 이이화, 한길사, 1993
※ 허목의 고학과 역사인식-'동사' 중심으로 〈한국학보〉 40 : 한영우, 일지사, 1985
※ 영남사림파의 형성 : 이수건,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9
※ 한국유학사 : 이병도, 아세아문화사, 1987
※ 조선전기 기호사림파연구 : 이병휴, 일조각, 1984
※ 한국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999-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