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대학원생이 쓴것으로 완벽한 논문입니다.
목차
Ⅰ. 序 論
Ⅱ. 本 論
1. 生涯와 家門的 處地
2. 惠寰 文學의 歷史的 背景
(1) 朱子學과 古文의 虛學化
(2) 閥閱과 士의 葛藤
(3) 明末․淸初 思想의 流入
3. 惠寰 小品文의 主題
(1) 自主自運 - 自我의 각성(認識論)
(2) 離古爲神 - 개성의 해방(創作論)
(3) 損上益下 - 아래로 향한 사랑(愛民意識)
(4) 世道非矣 - 세상을 향한 경종(警世意識)
4. 惠寰 小品文의 特徵
(1) 奇拔한 着想
(2) 斬新한 內容
Ⅲ. 結 論
■ 參考文獻
본문내용
Ⅰ. 序 論
李用休(肅宗34년∼正祖 6년)는 字가 景命이고 號는 惠, 탄만이다. 그는 燕巖과 더불어 '在野文衡'으로까지 불리면 문학으로 당대에 획을 그었으며, 치열한 시대정신으로 前代의 문학에서 진일보한 성취를 올린 인물이다. 叔父인 星湖 李瀷의 문학을 계승한 그는, 당시 擬古主義에 의해 주도되던 문단에 기발하고도 참신한 文風을 일으켰다고 평가되었다. 또한, 그는 18세기 중·하반기에 있어 蔡濟恭과 함께 近畿南人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하였다. 樊巖이 經濟之士로서 조정에, 惠은 文章之士로 재야에 있으면서 南人의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혜환은 18세기의 문학사적 위상에 비해 오랫동안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혜환이 無官의 선비로 평생을 창작에만 전념하면서 지냈기에 정치적 비중이 적었고, 그의 아들 李家煥이 西學의 괴수로 처형되어 문집의 간행이나 유포가 어려웠기 때문이 아닌가 사료된다. 혜환 문학의 중요성은 李家源 선생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는데, 그는 "당시에 각자의 독특한 문체를 창립하여 一代를 놀라게ㅔ 한 이는 李用休·李家煥 부자와 朴趾源이다. 兩家의 문체는 비록 다르나 일대를 풍미시키고 후배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은 마찬가지다"라고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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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血祚, 『燕巖 朴趾源의 思惟樣式과 散文 文學』, 성균관대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2
李佑成, 「實學硏究序說」,『韓國의 歷史像』, 창작과 비평사, 1983
姜明官, 『한국 고문의 이론과 전개』, 태학사, 1998
조현덕, 『혜환 이용휴의 사유양식과 소품체 산문 연구』, 고려대 교육대학원,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