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근대 인천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4.12.04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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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대 인천 관련 조사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밤길’에 나타난 근대 인천 노동자의 생활상
2. 근대 인천의 모습
(1) 근대 화폐를 탄생시킨 전환국
(2) 근대식 천일염전
(3) 우리나라 최초의 통신망의 설치
(4) 근대식 정미소
(5) 서구식 초등 교육의 시작
(6) 경인철도
(7) 최초의 서구식 공원
(8) 개신교의 전래 및 감리 교회
3. 근대 인천 역사 속의 대표적 인물
(1) 고유섭(高裕燮)
(2) 김활란(金活蘭)
(3) 김구(金龜)
Ⅲ. 결론
본문내용
인천은 면적 964.53㎢, 인구 250만이고, 경기도 중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 개풍군·황해도 연백군, 동쪽으로 서울특별시·김포시·부천시·시흥시·안산시, 남쪽으로 충청남도 서산시에 접하고, 서쪽으로 서해에 면한다. 인천은 개항과 함께 실질적인 국제항구로 등장하면서 근대 서구 문물이 제일 먼저 밀고 들어온 관문이었다. 그리고 정치(政治), 외교(外交), 군사(軍事)활동의 중심지로서 개항 후 청(靑), 일(日), 미(美), 불(佛), 로(露)와 같은 열강(列强)들이 서로 다투어 이 고장에 영사관을 개설하고 그들의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각 국의 지계(地界)를 만들어 정치, 외교, 경제의 발판을 구축하고 그들의 실력을 겨루려 하였다.
특히 청국 , 일본, 러시아의 세력다툼이 치열했는데 인천이 이들 삼대세력이 다툴 때마다 각국의 전함이 집결하고 군대가 상륙 하는 등 군사적인 요충지가 되기도 하였다. 또 각국 정치 요인이 출입하는 수도의 관문으로서 정치, 외교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행하였다. 인천은 지리적, 정치적, 군사적인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제일먼저 근대화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혜택을 입은 곳이지만 그 속에는 열강들의 침탈의 욕심으로 근대화 된 것이 태반이었다. 본고에서는 미흡하나마 화려한 근대화 속에 가려진 노동자의 삶을 들추어 보았고 당시 근대화된 인천의 모습과 역사 속의 인천의 인물을 소개하였다.
참고 자료
인천 역사의 자랑. 인천광역시청. 2001.
네이버(www.naver.com) 오픈백과 사전. 친일의 길 걸은 여성 지도자의 대명사 김활란.
강정숙(영남대 강사·여성학)
발굴 한국 현대사 인물(제3권). 한겨레 신문사 .
인천광역시청 홈페이지(www.incheo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