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사] 사단칠정논쟁
- 최초 등록일
- 2004.12.12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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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상사 강의를 들을 때 작성한 레폿입니다...조선 유학 중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 논쟁에 대하서 간략히 정리한 글입니다...참고하세요~
목차
1. 四端七情 논쟁은 왜 시작되었는가?
2. 논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3. 논쟁의 진행
4. 四端七情 논쟁이 주자학에서 갖는 의의
<<참고 문헌>>
본문내용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논쟁의 발단은 秋巒 鄭之雲의 「天命圖」를 이황이 수정하면서 비롯되었다. 본래 정지운은 동생 정지림을 가르치기 위해 「천명도」와 圖解를 작성했는데 그 내용이 세상에 유포되면서 이황도 이를 보게 되었다. 이황은 「천명도」를 읽어 본 후 그 내용 중에 잘못된 점이 있다 하여 정지운을 만나 내용을 수정하도록 권하게 되었다. 즉 정지운이 “사단은 리에서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 것이다”(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라고 작성했던 부분을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로 고치도록 한 것이다. 이에 정지운도 이황의 견해를 따라 새로 「天命新圖」를 작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또한 세상에 널리 유포되어 학자들에게 전해졌던 모양이다. 「천명신도」를 작성한지 6년이 지난 뒤에 이황은 기대승에게 보내는 짤막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士友들 사이에 사단칠정설을 논하는 것을 전해 들었는데, 내 생각도 일찍이 고친 말이 온 당치 못함을 스스로 불만족스러워했다. 심한 반박을 받으니 더욱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어 다음과 같이 고치고자 한다. 사단의 發은 純理이기 때문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은 氣를 겸하였으므로 선악이 있다고 하면 병폐가 없지 않겠는가?
이를 보면 당시 이황이 수정한 「천명신도」의 내용으로 인해 학자들 간에 논의가 심하게 일어났던 모양이고, 그 내용 또한 “四端은 理가 發한 것이고 七情은 氣가 發한 것”이라는 표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황이 이처럼 기대승에게 먼저 편지를 보내 자기 학설의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보아, 특히 기대승이 이황의 입장에 반대했거나 먼저 이황에게 질의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기대승의 「연보」에도 32세 때인 무오년 8월에 정지운이 와서 천명도설을 강론했고, 그해 10월에 이황을 만나 처음으로 四端七情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게 되었다고 기록된 데서도 알 수 있다.
이 편지의 핵심은 이황이 원래 “四端은 理가 發한 것이고 七情은 氣가 發한 것”이라고 했던 것을 “四端의 發은 順理이기 때문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七情의 發은 氣를 겸하였으므로 선악이 있다”는 표현으로 바꾼 데 있다. 그러나 이황이 이처럼 간단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장장 8년간에 걸친 대논쟁이 불붙게 된다.
참고 자료
1. 다카하시 도루 지음, 이형성 편역,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유학사』, 예문서원, 2001
2. 유명종 지음, 『퇴계의 일생과 철학체계』, 현대미학사, 2000
3. 전호곤 저,「주희 심성론의 한국적 전개를 위한 최초의 갈등」(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논쟁으로 보는 한국 철학』), 예문서원, 1996
4. 조준하 외7(한국인물유학사편찬위원회) 지음, 『한국인물유학사②』, 한길사, 1996
5. 황의동 저, 『고봉 기대승의 철학연구』, 고봉학술원,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