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선교학 인문학] 대천덕(아처 토레이)신부의 삶과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4.12.13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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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선교사인물연구라는 수업에서 발제물로 만든거구요.
많이 부족하지만..열심히 만든 발제물입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아처 토레이의 생애와 사상적 배경
성령
코이노니아 (Koinonia)
토지문제
예수원이야기
토레이 신부의 죽음과 그가 남긴 것
참고자료
본문내용
한국교회는 그간 놀라운 속도와 규모로 급성장하였다. 그런 가운데 여러 가지 문제들이 부각되기 시작하는데 그 중 한가지가 기독교가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일에 무관심하고 개인적 구원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그 한가지 요인이다. 요즘 이런 이유로 교회갱신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 구원 뿐 만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당연히 느끼고 가져야할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한 선교사가 있다. 그 사람은 루벤 아처 토레이다.
루벤 아처 토레이 그의 가슴에는 개척자의 피가 흐른다. 루벤 아처 토레이 강원도 태백 산골짜기에 예수원을 설립하고 성직자와 사회개혁가로서 험난한 길을 개척해온 대천덕 신부의 본명이다
1918년 1월 19일 중국 산둥성 제남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선교사 집안의 1남1녀중 막내로 태어난 토레이 신부는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중국에서 살아오던 토레이가족은 1926년 중국의 전쟁으로 3년간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냈다. 미국으로 건너간 어린 토레이 신부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3년만에 중국으로 돌아온 토레이 신부 남매는 중국북부에 있는 미국인 학교에 다녔다.<3년간의 미국생활은 토레이 신부에게 개척자의 삶에 대한 관심을 심어주었을 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현대세계에 적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척하게 해주었다.> 북중국 미국인 학교에 다닐 때 토레이 신부는 자신의 모험심과 호기심 때문에 선생님들로부터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15세가 되던 해 부모님의 결정으로 토레이 남매는 한국에 있는 평양 외국인 학교로 옮기게 됐다. 평양 외국인 학교에서의 토레이 신부는 중국에서와는 달리 ‘기독생활부장’이라는 일도 해가며 매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공부를 했다. 그는 한국과의 첫 만남은 10대 시절 베이징의 미국인 학교에 다니다 15세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평양으로 와 2년간 머무른 때였다.
참고 자료
참고자료 : 대천덕. 신학과 사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2003
대천덕. 대천덕 자서전 개척자의 길. 1999
현재인. 예수원이야기. 1999
대천덕. 우리와 하나님. 1988
토레이1세.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예수원 홈페이지
성토모 홈페이지 http://www.land.kimc.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