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과학혁명과 프랑스의 신구논쟁
- 최초 등록일
- 2004.12.14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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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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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1.1. 과학혁명
2. 신구논쟁 (Querelle des Anciens et Modernes)
2.1. 신구논쟁의 발단
2.2. 신구논쟁의 전개
2.3. 건축에의 신구논쟁의 전개
2.4. 신구논쟁의 결론
2.5. 신구논쟁의 의의
3. 수플로의 파리 팡테옹 (Pantheon, Paris. designed by Soufflot)
3.1. 18세기 정역학의 연구와 팡테옹 논쟁
3.2. 논쟁의 쟁점
3.3. 논쟁의 의의
본문내용
3.2. 논쟁의 쟁점
3.2.1. 수플로와 빠뜨
1755년 파리의 생트 주느비에브 (Ste. Genevieve) 성당의 현상설계에 수플로 Jacques-Germain Soufflot (1713~1780), 프랑스의 건축가,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대표적 인물이며 파리의 에꼴 드 드루아가 대표작이며, 궁정건축가로 루브르 궁전 공사에도 참여.
는 당시의 규모에선 상당히 큰 돔을 훨씬 경량화된 구조로 지지하는 설계안을 제출하였고 그 구조 안정성에 관해 삐에르 빠뜨등의 전통적 건축가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팡테옹이라고 불리게 되는 이 건축물을 놓고 시작된 논쟁은 30여년간 지속되었고 시공, 구조라는 건축의 측면에서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가를 토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교회는 고딕건축의 광대함과 고대건축의 우아한 주범들을 잘 조화시킨 건물로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라 평가된다. 철물을 많이 사용하여 시공하였고, 입면에서 보이는 독립 지지기둥과 수평 엔타블레이쳐는 로지에가 건축의 필수요소로 제안한 원시오두막을 드러내고 있다.
수플로는 실험물리학, 화학, 지질학등에 관심을 가진 건축가였고 빠뜨는 건축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5주범을 제외하고 시공의 기술 문제라고 생각하는 진보적인 사상의 건축가였다. 이들은 미학 규범에서 공통적으로 긍정적인 미를 분명히 보장해 줄 수 있는 취향과 수치 비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나 수플로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실험과 계산으로 나온 구조의 이론 결과를 더 확실하다고 믿었고 빠뜨는 정역학에서 수학과 역학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전통과 경험의 접근 방법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빠뜨는 수플로의 계획안과 과거의 작품들을 동일 조건하에서 비교한다면 그 계획안은 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였고 수플로의 정량화된 근거와 수학 공식들을 비난하며, 디자인 결정은 일상의 경험에 상응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참고 자료
과학혁명과 관련하여 본 17-18세기 프랑스 건축분야의 변천에 관한 연구,
류전희,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석사학위 논문, 1988
건축미론, 임영배, 도서출판국제, 1994
월간 플러스, 건축의 신구논쟁과 그 영향, 신재순, 1989. 8
월간 플러스, 신구논쟁의 전개 및 그 의미, 류전희, 198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