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회 육인전』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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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을 반시계 방향으로 둘러 보았는데 처음 본 것이 한태상님의 작품이었다. 솔직히 서예 전시장에 있으니 ‘이런 것도 서예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지 그냥 단독으로 작품을 접했다면 추상화 쪽에 가깝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막의 모래 속에 나무 막대기로 의미없이 휘갈긴 듯한 것은 제목인 ‘흔적’과 잘 어울렸다. 마치 휭하고 바람이 한 번 불어주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행한 언니가 “너는 이게 글씨로 보이니?”라고 물었을 때는 참으로 난감했다. 알아볼 수 있어야 글씨인가? 한자로 쓰여 있어서 글씨인 것을 알겠지만 무슨 뜻인 줄 전혀 모르는 작품과 이 작품의 나에게 주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짧지만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정한주님이 쓴 장태평 시 「하루」였다. 둥그런 너무나 자연스럽게 둥근 해를 둘러싸고 있는 글은 나에게 왠지 모를 푸근함을 주었다. 부드러운 해 가운데 있는 또 하나의 해는 가운데 있지도 않고 동그랗지도 않고 어딘가 어설퍼 보이기까지 했지만 작품 전체의 구심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씨를 쓰는 행위가 단순히 기술적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고, 예술이 되는 까닭을 여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정채봉님의 글이 생각났고 둘이 닮았다는 새악이 들었다.
이옥남님의 이규보의 시는 간단명료하면서도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바둑판 속에 이규보 시의 원문을 꾸밈없는 단순함으로 실어놓은 부분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한 일(一)자 하나에서도 나 같은 초심자가 감히 바랄 수 없는 내공이 느껴졌다. 한 획 한 획을 똑바로 긋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너에게는 비뚤비뚤한 가운데에서도 정돈됨을 보여주는 이 작품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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