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학] 간화선과 묵조선
- 최초 등록일
- 2004.12.29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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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는 글
Ⅱ.
(1) 간화(看話)와 묵조(黙照)의 역사적 배경
(2) 간화선과 묵조선의 명칭에 대한 유래
(3) 간화선의 특징
(4) 묵조선의 특징
(5) 간화선과 묵조선의 차이
Ⅲ. 맺는 글
본문내용
간화선(看話禪)과 묵조선(黙照禪)이 성립된 것은 달마조사가 중국에 건너온(梁武帝 AD527)훨씬 후의 일이다. 즉 달마 후 200년경에 선의 대종장인 6조 혜능대사가 선법을 드날리던 시절에도 공안(公案)이니 화두(話頭)니 간화(看話)니 묵조(黙照)니 하는 것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어구도 사용된 일이 없었다. 6조후 약 300년간 즉 당의 중엽부터 남송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서기 8세기 중엽부터 10세기 초경)는 6조이하에서 비출되는 대종장들이 각종풍이 진작되는 소위 오가칠종(五家七宗)을 형성하는 시대로서 선가의 황금시대임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에도 간화선 묵조선이라는 양식의 선법은 없었고 다만 공안(公案)이라는 어구가 8세기말경에 황벽희운(黃蘗希運), 덕산선감(德山宣鑑), 진존숙(陳尊宿)등에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중국불교의 조간을 이루었던 선종도 당말송초(唐末宋初)에 이르러 쇠퇴 일로를 걷기 시작하여 제5조 영종 때(英宗 AD1064)부터 벽안종사(碧眼宗師 - 눈밝은 종사)는 자취를 감추고 할안종사(瞎眼宗師 - 눈을 멀게 하는 종사)나 머리를 깎은 외도들이 활기를 띠었다. 천동굉지(天童宏智)가 제창한 묵조선을 그의 제자들이 진의를 모르고 잘못 지도하는 것에 분개하여 대혜(大慧)는 묵조선을 타파하는 도구로서 간화선(看話禪)을 내세워 당시 쇠퇴일로에 있는 달마 전통의 원돈 종지를 중흥시켰다.
우리는 날마다 생각을 쉬는 좌선과 의두연마 등으로 생각을 깊게 하는 수행을 병진하고 있다. 우리의 수행법이 조화로우면서도 수승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땀흘려 하는 수행으로만 증명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 같다.
참고 자료
「禪思想史」禪文化硏究所 鄭性本 지음(1993. 2. 10)
「대혜선사의 생애와 사상」효명(수다라 5권)
「대혜선사의 묵조선 批判硏究」(1991) 東國大學校 院 禪學科 金鎬貴 碩師論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