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트 크레송과 여성 참정권과의 관계
- 최초 등록일
- 2005.01.27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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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왜 ‘에디트 크레송(Edith Cresson)’인가?
2. 본론: ‘에디트 크레송’, 그녀의 발자취를 살펴보다.
l.에디트 크레송의 성장과정 및 정치인생
ll.시련과 정치적 리스크(Risk)
3. 결론:『유능한 여성 정치인』개인적 역량과 사회적 뒷받침의 조화 필요
l.성과와 의미
ll.한계점
lll.맺는 말
본문내용
우리들은 자신의 참정권을 너무 쉽게 행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관심 속에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성인 남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 참정권의 역사는, 그러나 채 150여 년이 되지 않는다. 평등한 참정권을 얻기 위해 인류는 지난 세기동안 무수한 피와 투쟁의 역사를 치러냈다. 그 중에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한 투쟁은 그 어떤 참정권 투쟁보다 길고 지루했으며 또한 과격했다. 1920년에 미국, 1928년에 영국, 1944년에 프랑스에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948년의 일이다. 치열한 노력 끝에 주어진 참정권이건만, 정작 여성들이 정계에 진출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정치적 영향력이 갈수록 증대돼 가고 있긴 하지만 전세계인구의 절반이 남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도 미미한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2002년도 국무총리로 ‘장상’ 전(全) 이화여대 총장이 지명된 바 있지만 공직자의 도덕성 시비에 말려 부결된 바 있다. 또한 지난 17대 총선에서는 여성의원이 헌정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선출된 해이기에 ‘여성의 정계진출’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고는 하지만 전체 299명의 국회의원 중 13%인 39명만의 여성의원이 배출됐다는 수치를 보면 남성과 동등한 목소리를 내는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프랑스 최초의 여성수상’이라는 이력을 가진 그녀의 정치인생과 여성이기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 타격이 컸던 정치적 실수 등은 앞으로의 우리나라 여성 참정권의 향상을 위해 분석해 보는 것도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 최초의 여성총리였던 ‘에디트 크레송’의 집권이 가졌던 정치적 의미와 더불어 우리나라 여성의 정치 참여현실에 대해서 짚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