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조선] 실학
- 최초 등록일
- 2005.02.11
- 최종 저작일
- 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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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학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 내용... 실합니다..
목차
가. 서론
1. 실학의 시기
2. 실학의 개념
나. 본론
1. 실학의 정신
2. 학파의 형성과 그 특성
3. 실학사상과 개화사상과의 관계
다. 결론
부록-인물열전
본문내용
실학은 조선 후기 역사의 큰 특징이며 사회발전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실학의 발생시기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먼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으로 야기된 왕조체제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사회적․학문적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관인 식자층 일각에서 종래의 국가교학이었던 주자학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일어나고, 대동법의 실시와 균역제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는 등 정부 타원의 제도 개혁이 시도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전통적인 예학, 성리학, 경학, 사학은 물론 농학, 병학, 천문학, 지리학, 문자학 등 실용적인 학문 연구가 점차 확대되고 있었다. 또 불교․서학이나 한당(漢唐)의 유학, 양명학 등을 포함하는 여러 사조․유파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물론 이를 통하여 정치․경제․군사․교육 등 현안의 해결방안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또한 농업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농업생산량이 크게 증가되었으며, 화폐경제의 발달로 인해 조세나 지대를 화폐단위로 환산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경제적 변화는 평민지주와 호상(豪商)의 등장을 불러 농민층의 분화가 전개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 민중세계는 차츰 성리학적 문화의 굴레를 벗어나 문화영역을 넓혀 가면서 양반문화와 양립되는 민중문화를 발전시켜 갔다.
그러나 조선의 지배원리였던 성리학은 17세기 이후 예학(禮學)의 측면을 강조하여 예 질서를 강요함으로써 전쟁 후 격심해진 사회변동을 저지 억제하려 하였으며, 禮의 실천을 통해 신분질서의 유지, 동족집단의 결속, 가부장적 폐쇄성을 강화하여 양반층의 지배권을 옹호하고 민중세계를 중세적 지배질서 속에 묶어두려 한 것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강조된 예론은 지배계급 자체를 심한 벌열 정치 속으로 몰아넣었다. 실학은 조선왕조 후기의 이와 같은 분위기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