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 세키가하라 전투
- 최초 등록일
- 2005.04.10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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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 세키가하라(關ケ原) 전투란 무엇인가?
2.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략
3. 이시다 미쓰나리의 전략
4. 도쿠가와 승리가 가능했던 요인
5. 이시다 미쓰나리의 패배 요인
6. 결론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목차
1. 세키가하라(關ケ原) 전투란 무엇인가?
2.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략
3. 이시다 미쓰나리의 전략
4. 도쿠가와 승리가 가능했던 요인
5. 이시다 미쓰나리의 패배 요인
6. 결론
본문내용
1. 세키가하라(關ケ原) 전투란 무엇인가?
케이쵸 3년(1598) 8월 18일,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히데요시가 사망한다.
히데요시가 죽자 이에야스는 천하인이 되기 위한 행보를 시작하게 된다. 그에 대해서 이시다 미쓰나리는 “도요토미 정권을 탈취할 위험이 있는 사람이 이에야스” 라며 일찍부터 그를 경계하며 대립하고 있었다. 미쓰나리는 히데요시 아래의 각 다이묘에게 결단을 촉구하면서 군사를 일으켰다. 그에 응했던 인물이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우키다 히데이에(宇喜田秀)”,“코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秀秋)”, “쵸소카베 모리치카(長宗我部盛親)”,“코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등이었다.
케이쵸 5년, 아이즈(会津)로 이주되었던 우에스기 가게카쓰(上杉景勝)는 서둘러 성채를 고쳐 짓고 무기와 식량을 비축하는가 하면 병력을 증강시켜 주변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에야스는 그의 상경을 요구했으나 가게카쓰는 군비를 확충하며 끝장을 볼 태도를 보였다. 이에야스는 “우에스기는 배반의 위험이 있다”며 오사카로부터 대군을 이끌고 우에스기를 토벌하기 위해 6월16일에 오사카를 떠나 후시미 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18일에는 61세의 노장 도리이 모토타다(鳥居元忠)에게 불과 2000의 군사를 주어 성을 지키게 하고 에도를 향해 출발했다. 천천히 행군하던 그는 7월2일 에도에 도착해 20일이나 성에 머물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몸은 아이즈로 향하고 있으나 마음은 오사카에 있었다. 아이즈 토벌이 목적이라면 항상 과감하고 신속하게 행동하는 이에야스가 이처럼 느긋하게 작전을 전개할 리 없었다. 미쓰나리의 동향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