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서론,본론,결론과 목차와 그림목차를 구분하여 보기쉽게 잘 정리된 글입니다. 참고할 수 있는 사진들도 첨부되어 있으며, 서론과 결론부분에는 제 의견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목차
Ⅰ. 서론
Ⅱ. 대동여지도
- 청구도와 비교하여 보는 대동여지도
1. 규모와 구성
2. 절첩식 지도
3. 인쇄본
4 지도표의 사용
5. 독사지도적 성격을 지닌 청구도
6. 산맥의 표현 방식
7. 거리의 표시
8. 현대지도와의 차이
9. 그 외 대동여지도의 특징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지도는 하늘, 땅, 사람의 모습을 담은 과학이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하늘·땅·사람의 세 가지 요소를 우주의 근본으로 생각하며 그중에서 땅은 만물의 형성 기반이며 만물의 활동의 근거지로서 중시되었다. 국가와 국민을 통치하기 위해서도 토지는 경제적으로나 정치·군사적으로 기초적인 물적 토대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땅의 이치 즉 지리(地理)는 고대부터 탐구되었으며 중요시되었다.
지리의 한 부분이었던 지도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큰 그릇 속에 담겨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사람들의 행위와 제도가 우주의 근본 원리를 찾으려는 노력으로서 우주를 닮으려는 소우주의 구현이었음을 보여 준다.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고지도의 대명사이며, 우리나라 지도의 고전이다. 1898년 일본 육군이 조선 침략의 기초 단계로 경부선을 부설하면서 측량기술자 60명과 한국인 2~3백명을 비밀리에 고용하여 1년 강 조선을 샅샅이 뒤져 5만분의 1 지도 3백장 정도를 만들었는데, <대동여지도>와 큰 차이가 없어 감탄하였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이어진 일본의 한국 토지측량에 <대동여지도>를 사용하였다는 일화와 함께 <대동여지도>의 정확성과 훌륭함을 전해 주는 증거로 널리 전해 온다. 일본 국회도서관에는 일본 육군에서 군사지도로 사용하였던 <대동여지도>가 보관되어 있어, 이 이야기가 전설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고지도, 나아가 우리나라 지리학의 대명사로 인정받고 있다. 현전하는 <대동여지도>중 성신여대 박물관 소장본은 보물 제 850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는 1934년 일제가 교과서에 수록한 이래 남한의 초등학교 교과서와 북한의 중등과정 역사교과서에 실려 있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지리학자, 최고의 지도이다.
여기서는 <대동여지도>를 <대동여지도>가 나오기 전 김정호가 만든 <청구도>와 비교하여 그 가치를 알아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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