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벽초 홍명희, 몽양 여운형, 우사 김규식, 심산 김창숙, 약산 김원봉
- 최초 등록일
- 2005.04.18
- 최종 저작일
- 2004.09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좌우합작에 힘을 모았던 한국의 위인들에 대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1.벽초 홍명희의 일대기..
2.몽양 여운형의 일대기..
3.우사 김규식의 일대기..
4.심산 김창숙의 일대기..
5.약산 김원봉의 일대기..
본문내용
◆벽초 홍명희-친일 세력을 피해 평양을 선택한 진정한 민족주의지자
종래 벽초 홍명희는 식민지시대에 활동한 사회운동가중의 한 사람으로서 임꺽정이라는 역사소설을 한 편 쓴 적이 있는 인물정도로만 미미하게 알려져 왔다. 더욱이 해방 후 그가 월북한 관계로 그의 행적을 더 이상 자세히 알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에 관한 일체의 관심이나 논의가 금기시되어왔다.
그가 남긴 삶의 자취를 총체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 우선 홍명희는 한국근현대사에서 민족해방운동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민족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재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조선왕조가 급전직하로 몰락해가던 19세기 말에 태어난 그는 경술국치 후 중국으로 건너가 신규식, 박은식을 중심으로 한 동제사의 해외 독립운동에 가담하였으며, 삼일운동 때는 향리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르었다. 그리고 12920년대에는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신사상연구회와 화요회의 주요 멤버로 활동했으며, 좌우익 세력이 최초로 연대한 민족협동전선체인 신간회의 실질적인 지도자로서 헌신적으로 활동하다가 재차 투옥되었다. 해방정국에서는 민주독립당의 대표로서 민족통일국가의 건설을 위한 통일전선운동에 진력하다가 남북연석회의를 계기로 북에 남은 뒤, 그곳에서 부수상 과학원장 등을 역임했다고 한다.
해방이후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1945년 12월 15일에 결성된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된다.
해방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흐름은 당연히 단죄되어야 할 친일세력들이 되살아나 권력의 핵심 속에 서서히 자리잡아 가면서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벽초에게 모든 행위와 삶의 기준, 원칙은 일본식민통치에 대한 거부와 국권회복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