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붕당정치에 관한 전반적인 자료 모두 포함되어 있어요!!
목차
Ⅰ. 서론
Ⅱ. 붕당론
Ⅲ. 붕당정치의 성립과 발달
Ⅳ. 붕당정치의 변질과 쇠퇴
Ⅴ. 붕당정치의 발생원인
Ⅵ. 결론
본문내용
-16세기 후반 정권을 장악한 사림은 정치의 중심을 왕에서 사림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의 경우는 우리 나라보다 훨씬 앞서서 사림 정치론이 등장하였으나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조가 멸망할 때까지 한번도 정치의 주도 세력이 신하로 이동한 적이 없었다. 이 부분에서는 중국과 우리 나라에서의 붕당에 대한 인식과 붕당의 의미 및 붕당 정치론 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붕당은 유교 정치사상에서도 당초에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중국의 경우, 한·당 시대까지도 정치는 군주 한 사람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여, 군주 앞에서의 신하들 간의 붕당은 거의 죄악시되다시피 하였다. 한대의 당고의 화는 바로 그러한 관념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송대에 들어와서 그러한 붕당관은 바뀌게 된다. 집단, 무리로서의 붕당은 정치에서 부정될 수 없는 것이란 전제 아래, 구양수의 「붕당론」 및 주자의 이른바 「인군위당설」등과 같은 새로운 해석이 제시된다.
구양수는 우선 붕당을, 공도의 실현을 추구하는 자들의 모임인 ‘군자의 당’과 사리 도모를 일삼는 ‘소인의 당’ 두 가지로 나누어 전자를 ‘진붕’, 후자를 ‘위붕’이라고 각각 규정하여, 군주가 진붕의 승세를 유지시킨다면 정치는 저절로 바르게 이끌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리학의 대성자인 주자 역시 붕당의 기미를 염려하는 한 승상의 자문에 답하는 글에서, 구양수와 견해를 기본적으로 같이 하면서 좀 더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였다. 즉, 붕당이 있는 것을 념려할 것이 아니라, 그 붕당이 ‘군자의 당’이라면, 승상도 그 당에 들기를 주저하지 말 뿐더러, 나아가서 인군도 그 당이 되게 승상이 이끌어야 한다고 하였다.
중국 송대에서의 이와 같은 붕당관의 급선회는 하나의 력사적 발전으로서, 이것은 같은 시기에 양자강 남쪽 지역의 개발과 같은 경제적 성과를 배경으로 하여 정치참여 의식층이 확대된 데 따르는 것이었다. 고려 말 이래 경제적‧사회적으로 거의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우리 력사에서도 그것에 뒤이어 붕당관 또한 달라지게 된 변화가 확인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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