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사] 조보의 위상
- 최초 등록일
- 2005.04.29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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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본문
조보의 언론사적 의의
1. 신문적 요소를 가진 신문 유사물로써 근대 신문 발상에 일정한 영향을 줌
①보도, 선전적인 기능 수행
②발간방식
2. 우리나라 일간 정기인쇄신문의 형태가 16세기 후반에 이미 출현함
3. 매스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오래전부터 형성됨
조보의 한계점
1. 읽기 어려운 조보의 글씨
2. 위로부터 아래로의 하향식 기능만을 담당
▲맺음말
본문내용
조보의 언론사적 의의
1. 신문적 요소를 가진 신문 유사물로써 근대 신문 발상에 일정한 영향을 줌
①보도, 선전적인 기능 수행
조보는 봉건 통치 질서를 세울 목적으로 국왕의 명령, 지시들과 매일 매일의 결재사항들을 주요 결재내용으로 하였다. 가령 국왕이 조상에게 제사 지낼 좋은 날짜를 정하라는 지시를 받고 그 날짜를 왕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은 사항정부 각 관청의 관리들을 새로 선출,임명한 사항, 국왕의 이른바 ‘선정’과 미덕을 선전하기 위하여 흉년든 해에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 간절하여 조세를 면제’하게 한 사항 등 국왕의 정사, 궁중안의 거동을 알리는 자료들을 많이 실었다. 또한 조보에는 지방의 농사형편과 기상관계자료, 외교, 군사관계 자료, 화재, 폭우 등에 의한 자연재해들에 대한 자료들도 실렸다. 리용찬, ‘조선신문 100년사’ 28페이지
이 모든 것은 결국 조보가 보도적이며 선전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②발간방식
조보의 발행처는 승정원이었다. 아직 신문사와 같은 언론기관에서가 아니라 봉건정부에서 직접 그 발간사업을 담당, 수행한 셈이다. 승정원에서 봉건관리들에게 그때 그때 알릴 필요가 있는 자료들을 관공문서들 가운데서 선택 발취하여 매일 붓으로 써서 조보서에 게시하면 중앙 각 관서와 한성부 및 저(서울에 있는 지방장관들의 연락소와 같은 것)에서 기별서리들이 모여와 그대로 종이에 옮겨 베껴서 해당하는 관리들이 전달하였다. 리용찬, ‘조선신문100년사’ 29페이지
알릴 필요가 있는 자료만 선택적으로 게시했다는 점에서 이는 지금의 기사 검토 과정인 게이트 키핑(Gate keeping)과정과도 상응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조보의 독자는 중앙의 정승, 육조판서로부터 지방의 관찰사, 군수에 이르는 관리들이었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신문과는 먼 거리에 있었으나 그 내용과 발간방식에서 신문적 요소를 어느 정도 재현하고 있다.
참고 자료
조선 신문 100년사
새로 쓰는 한국언론사
언론이 조선왕조 500년을 일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