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지혜] 화쟁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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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간 화쟁(和諍)에 대해서 교재를 포함한 여러 가지 자료를 읽어보았다. 문득 예전에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가 떠올랐다. 내가 읽었던 그 사회 교과서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제시되어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내려 가다보면 언제나 결론은 ‘조화시키자’였다. 어린 마음에 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구체적이지 않고 하나인가 의아해했다. 교과서가 참으로 성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화쟁에 대해서 읽으면서도 그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화쟁은 신라의 위대한 고승 원효(元曉:617～686)의 중심사상이다. 그가 말하는 화쟁은 서로 다른 학설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고집하거나 버리지 않고 학술 사이의 모순과 대립을 해소시켜 손상 없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을 이루는 것이다. 또한 원융회통은 모순되는 여러 주장을 모아 모자람 없이 원만하게 융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원효의 화쟁 사상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몹시도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만 해도 대통령 탄핵, 이라크 파병 같은 각종 중요한 사회적 쟁점에 대한 격렬한 논쟁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여전히 사회 곳곳에 불씨는 남아있어서 불이 붙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러한 때에 통합과 조화를 중요시하는 화쟁 사상을 통해 우리는 의견의 통일을 이룰 수만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화쟁 사상이 사회의 갈등을 조화롭게 통합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우선 근본적으로 화쟁 사상 자체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효는 화쟁의 가능 근거로 일심(一心)을 제시하였다. 일심이란 중생의 마음(衆生心)과 부처의 마음(佛心)으로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만 어두움과 자각되지 않은 마음인 무명(無明)이 덮여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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