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세미나]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여행기)
- 최초 등록일
- 2005.05.11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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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
목차
작가·종교인으로서의 활동
아일랜드 은둔기
말년
본문내용
작가·종교인으로서의 활동
1699년 1월에 템플이 갑자기 죽음으로써 스위프트는 다양한 체험을 겪는 불확실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해 여름에 그는 더블린으로 돌아가 목사이자, 아일랜드에 재판관으로 오기로 된 버클리 백작의 비서가 되었다. 그뒤 1701, 1702, 1703, 1707~09년에 영국에서 지냈으며, 매력적인 성품과 작가로서의 재능이 런던에서 널리 인정받았다. 그외에 그의 입장이 바뀐 것은 없었다. 그는 무어파크에서 지낼 때 이미 킬루트의 신부직을 그만두었으나, 1700년초에는 더블린에서 멀지 않은 라러코 교구 신부직을 비롯해 아일랜드 교회의 여러 직책에 임명되었다.
이때 출판된 작품을 보면, 그가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일어난 일에 모두 깊이 관여했던 것 같다.
여러 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테네와 로마의 귀족과 평민 사이의 논쟁과 불화에 대하여 Discourse of the Contests and Dissensions between the Nobles and the Commons in Athens and Rome〉(휘그당의 원칙에 대한 설득력있는 진술인 동시에 두 정당의 자제를 촉구하는 글)·
(종교의 발전과 관습의 개혁을 위한 계획 A Project for the Advancement of Religion, and the Reform
ation of Manners〉·〈종교와 정부에 대한 영국 교회의 입장 The Sentiments of a Church of England Man with Respect to Religion and Government〉이다. 런던에서 그는 점점 유명해졌다. 종교와 정치에 관련된 평론은 진지하면서도 아이러니로 가득 찼으며, 1704년에 출판된 〈지어낸 이야기〉는 익명으로
발표되었지만 그의 글로 통했다. 1708~09년에 발표한 유명한 〈비커스태프〉 팜플렛을 비롯한 장난스러운 글에서는, 유명한 점성술사 존 패트리지의 죽음을 먼저 예언하고 그뒤 죽은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하여 패트리지의 점술업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러한 여러 작품과 리처드 스틸이 1709년 〈태틀러 The Tatler〉지에 실은 짧은 시 〈아침의 묘사 A Description of the Morning〉처럼 침울한 분위기이지만 재미있는 작품들은 조지프 애디슨이 이끄는 휘그파 작가는 물론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스위프트가 휘그당의 정책에 불만을 느낀 것은 분명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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