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어학] 平安時代(평안시대)
- 최초 등록일
- 2005.05.13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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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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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시대구분
Ⅱ.간무천황의 헤이안쿄 천도 이유
Ⅲ. 섭관정치
Ⅳ. 문화
본문내용
Ⅰ.시대구분
평안시대(平安時代, 헤이안시대)는 794년(延曆13)의 평안경(平安京, 헤이안쿄)천도로부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가마쿠라(鎌倉)에 막부를 연 1192년까지의 약 400년간을 말한다.
①제1기-율령(律令)정치의 수정, 강화시기, 781년에 즉위한 간무(桓武) 천황은 도읍을 헤이안으로 옮기고 새 궁궐의 창건과 도시 조성을 위한 대사업을 일으켰다. 이것을 위해 지방관리의 숙정을 도모함으로써 지방 정치를 쇄신하는 한편 군사조직을 재정비하였다. 사가(嵯峨)천황 때에는 국내가 평정되고 당나라의 문화가 수입되어 조정의 의식과 조복(朝服)도 당풍을 따랐다. 그 뒤 율령격식(律令格式)의 수정과 정비를 단행하는 한편, 의식의 개량 •국사 편찬 •화폐 주조 등이 행해졌다
②제2기-엔기덴랴쿠노치(延喜天曆の治)시기, 엔키(延喜)와 텐랴쿠(天暦)(947-957)에 걸친 다이고천황(醍醐天皇)과 무라카미천황(村上天皇)의 치세로 천황친정이 행해졌던 좋은 시대로 섭관정치와 비교하여 후세에 이렇게 불렀다. 이 시기에는 당풍에서 탈피하려는 이른바 국풍(國風)문화가 발달한다.
③제3기-섭정관백(攝政關白)의 후지와라씨가 정치를 전담한 시기이다. 지방의 장원(莊園)은 대부분이 후지와라씨의 소유가 되었고 정치는 점차 문란해졌다. 문화는 궁정을 중심으로 크게 발달하여 가나의 발달, 와카(和歌)문학이 발달한다.
④제4기-원정(院政)시기로, 나라에는 2명의 주권자가 있게 되어, 그로 인한 대립과 마찰이 빈발하였다. 보원(保元,호겐)의 난이 일어나 귀족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결국 무사들이 무력으로 이 싸움을 해결하게 되고 이때부터 무가정치가 싹트기 시작한다. 처음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가 실권을 잡았으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다이라씨(平氏)일족을 멸망시키고 미나모토는 가마쿠라에 막부를 세움으로써 천왕에 의한 친정제(親政制)는 막을 내렸다.
참고 자료
이일숙 저, 『시대별일본문학사』(2000), 도서출판계명
카와이 아츠시 저, 원지연 역주, 『하룻밤에 읽는 일본사』(2003), 중앙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