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철학] 삼국유사 (제9조 효선편-빈녀양모(貧女養母))
- 최초 등록일
- 2005.05.16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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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유사중 제9조효선편의 빈녀양모편을 상세하게
해석 연구해놓은 보고서 입니다. 삼국유사 독후감이나 관련 리포트를 제출하시는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것을 약속드립니다.
목차
빈녀양모 원본
빈녀양모 번역본
이해하기 힘든 단어 ( 그 시절 상황 및 생활 )
그 외 효행 실천 사례
조선시대 생활을 통해 본 웃어른 공경
최근 효도사례 (기사관련)
본문내용
본문 번역본 : 빈녀양모(貧女養母)
효종랑(孝宗郞)이 남산(南山) 포석정(포石亭; 혹은 삼화술三花述이라고도 했다)에서 놀고자 하자 문객(門客)들이 모두 급히 달려왔으나, 오직 두 사람만이 뒤늦게 오므로 효종랑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들이 대답했다. "분황사(芬皇寺) 동쪽 마을에 여인이 있는데 나이는 20세 안팎이었습니다. 그는 눈이 먼 어머니를 껴안고 서로 통곡하므로 같은 마을 사람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이 여자는 집이 가난해서 빌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한 지가 이제 여러 해가 되었는데 마침 흉년이 들어 걸식해다가 살리기도 어렵게 되어 이에 남의 집에 가서 품을 팔아 곡식 30석을 얻어서 주인집에 맡겨 놓고 일을 해왔습니다. 날이 저물면 쌀을 가지고 집에 와서 밥을 지어 먹고 어머니와 같이 잠을 자고, 새벽이면 주인 집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한 지 며칠이 되었는데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전일에 강비(糠粃)를 먹을 때는 마음이 편하더니 요새 쌀밥을 먹으니 창자를 찌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치 못하니 어찌된 일이냐고 했습니다. 그 여인이 사실대로 말했더니 어머니는 통곡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여인은 자기가 다만 어머니의 구복(口腹)의 봉양만을 하고 색난(色難)을 하지 못함을 탄식하여 서로 껴안고 울고 있는 것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구경하느라고 이렇게 늦었습니다." 효종랑은 이 말을 듣고 측은해하여 곡식 100석을 보냈다. 낭의 부모도 또한 옷 한 벌을 보냈으며, 수많은 낭(郎)의 무리들도 곡식 1,000석을 거두어 보내주었다.
이 일이 왕에게 알려지자 그 때 진성왕(眞聖王)은 곡식 500석과 집 한 채를 내려 주고 또 군사들을 보내서 그 집을 호위해서 도둑을 막도록 했다. 또 그 마을을 표창해서 효양리(孝養里)라 했다. 그 뒤에 그 집을 희사해서 절을 삼고 양존사(兩尊寺)라 했다
참고 자료
삼국유사 1,2 (일연 지음/이재호 옮김)
신 삼국유사 (기열규·김정하·곽진석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