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지
- 최초 등록일
- 2005.05.19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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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역 사
㉯지 리
㉰인 물
㉱사 회
㉲경 제
㉳문 화
㉴산 업
㉵풍 속
㉶지 명 의 유 래
본문내용
㉮ 역 사
부산 지방에 대한 최초의 역사 기록은 동방 고대의 상태를 아는 데게 유일한 근본 사료인 <위지>에 나타난다. <위지>의 동이전은 3세기 전반기의 한족사회 모습을 알려주고 있는데, 이때 부산을 포함하는 낙동강 하류의 변진에는 미리미동국 등 12개의 작은 부족 국가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북쪽에서 고구려가 일어나고 서쪽 마한에서는 백제가 일어나고 동쪽 진한에서는 신라가 일어났다. 그리고 바다 건너에 왜국이 대두하게 되자 경남 일대의 변진에서는 6가야의 연맹이 형성되어 부산 지방도 후일 신라에 복속될 때까지 가야연맹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렇게 하여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최초의 부산 지방의 원시국가는 거칠산국이었다. 거칠산국의 중심지는 지금의 전포동 동편에 솟아있는 황령산 일대로서, 거칠산국에서 비롯된 거칠뫼라는 산 이름도 거칠다는 뜻의 한문을 빌어 황령산으로 변한 것이다.
그 후 거칠산국은 동북에서 남하하는 신라에 의해 병합됨으로써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해의 금관가야와 대치하게 되었다. 신라는 거칠산국을 병합하여 군을 설치하였고 거칠산군은 갑화양곡과 대증현을 거느리고 있었다. 뒷날 갑화양곡현은 기장현으로, 대증현은 동평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삼국정립기의 부산 지방은 거칠산군과 그 영현인 대증현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3국이 통일된 뒤인 757년(신라 경덕왕 16년) 거칠산군의 이름은 동래군으로 바뀌었다. 오늘날까지도 그 지명이 내려오는 동래의 뜻은 동해의 봉래산이라는 의미이다.
통일신라기의 행정 구역인 9주 5소경 중 양주에 속했던 동래군은 동평현과 기장현을 두고 있었고, 이때 부산 지방은 동평현에 속해 있었다. 동평현의 처음 치소는 지금의 초읍으로 생각되는데, 일제치하까지만 하더라도 초읍 주위에는 신라시대의 토성이 남아 있었다. 그 후 신라 말, 고려 초에 걸쳐 지방 호족들이 발호하여 부산 일대는 한때 후백제의 견훤이 지배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백과사전 및 인터넷 사이트